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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신채호 거주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북경시 동성구 방가호동
한글 북경시 동성구 옹화궁대가 북신교 주변
현지 北京市 东城区 雍和宮大街 北新桥 周围
역사적 의의
1924년경 신채호가 거처했던 곳
설명
신채호에게 1923년과 1924년은 희망과 좌절이 겹쳤던 시기였다. 그는 1923년 1월 개최된 국민대표회를 통해 독립운동계의 새로운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6개월여에 걸쳐 개최된 국민대표회가 무위로 끝나고, 창조파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톡에서 조직한 '국민위원회'마저 소련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자 크게 좌절하였다.
1923년 9월 경 북경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 무렵 석등암에 기거하던 그는 독립에 대한 전망이 무망해지는 듯한 상황에서 1924년 3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관음사는 당시 승려의 수가 3~4백 명에 달하는 대사찰이었다. 61일간의 계를 마친 그는 관음사에서 수도승 생활을 하였다.
이 무렵 그는 <유마경>과 <방엄경>에 심취하였으며, 특히 마명이 지은 『대승기신론』을 깊이 연구하였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 숙식이 해결되자 얼마동안 덮어두었던 조선사연구에 다시 몰두하였다. 『전후삼한고』의 집필은 관음사 시절에 이뤄졌다. 주위에 옛 국립도서관과 백림고적도서관이 있어 단재가 조선사연구를 하기에 좋은 입지임을 알 수 있다.
관음사로 알려진 두부지호동의 건물은 현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찰이 아니라 도교사원이었다. 현재 상가로 사용되고 있는 그 건물 상단에는 ‘중수제원 굉은관’이라고 쓰여 있다. 얼마 전까지 건물이 잘 보전되었으나, 최근 동성구 방산관리국 관할 하에 새로운 건물이 신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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