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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후 공동묘지

사적지 종류 묘역 국가 미국
대륙 북아메리카 지역 하와이
문헌상
한글 하와이주 오아후섬 호놀룰루 누우아누 애비뉴 2162
현지 2162 Nuuanu Ave., Honolulu, Oahu, Hawaii
역사적 의의
민찬호, 김노디 등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인물들이 묻혀있는 공동묘지
설명
하와이 한인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인 민찬호ㆍ김노디ㆍ이항우ㆍ김이제 등이 이곳에 묻혀있다. 민찬호(1879. 10. 21~1954. 2. 5)는 1919년 10월 10일부터 한인기독교회 목사로 줄곧 이승만의 감독ㆍ지도를 받아왔다. 그는 이승만과 같은 황해도 평산 출생으로 서울의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5년 하와이로 와서 한인감리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1911년 로스앤젤레스의 남가주대학에서 신학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후 그곳의 한인목사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의 요청으로 한인기독교회의 목사와 한인기독학원의 학감을 맡았다. 민찬호는 이승만과 깊은 친분을 맺어 왔기 때문에 일제의 자료에도 그를 ‘이승만 복심(腹心)의 자(者)’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1929년 한인기독교회의 목사를 사임한 후 민찬호는 1938년 12월 중한민중동맹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43년에는 단장으로 피선되었고,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총지부가 결성되었을 때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김노디(1898. 10. 29~1972. 5. 28)는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에 이민을 와서 1918년에 오하이오주의 Oberlin College를 졸업하였다. 이승만의 제자이며 평생 그의 독립운동을 위해 뒤에서 뒷바라지하였으며, 한인 기독학원, 한인기독교회, 동지회, 대한부인구제회 등 여러 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35년 손승운과 결혼한 후 ‘손노듸’로 알려졌고 잠시 ‘김해김’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해방 이후인 1952년 대한민국 구매청장을 지냈고 한인적십자사의 부회장도 지냈다.
이항우(1885. 5. 11~1911. 12. 27)는 영국 런던에서 유학하다가 미국으로 와 《신한민보》의 기자로 있다가 하와이의 《신한국보》가 발행되면서 주필이 되었으나 1911년 12월 27일 자살하였다. 김이제(1876. 10. 21~1968. 1. 29)는 하와이 처음으로 이민 온 모쿨레이아(Mokuleea) 사탕수수농장에서 1903년 7월 4일 그의 주재로 예배를 시작하였다.
오아후 공동묘지는 호놀룰루 시내에 있으며 주로 한국인ㆍ중국인ㆍ일본인 등 아시아계 사람들의 묘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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