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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촌 조선혁명군정학교 구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허베이성
문헌상
한글 하북성 섭현 하남점진 남장촌
현지 河北省 涉县 河南店镇 南庄村
역사적 의의
1944년 1월 조선의용군의 주력이 연안으로 떠난 이후, 태항산으로 들어온 조선인 청년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낡은 절간을 수리하여 군정학교를 세운 장소
설명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와 학생대원들은 1944년 1월 말 타이항산(太行山)을 떠나 옌안 (延安)으로 이동하였다. 조선의용군 대원이었던 이화림에 의하면 조선의용군과 팔로군 측에서 안전한 옌안지역에 조선혁명군정학교를 건립하고 화북 각지에 있는 의용군 대원들을 집결시켜 군사훈련과 정치학습을 실시키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타이항산으로 조선인 청년들이 계속 모여들자 이를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1944년 9월 9일 조선독립동맹 태항분맹이 있던 서현(涉縣) 허난점(河南店)에서 서남쪽 언덕 1.5km 떨어진 난좡촌(南庄村)의 한 사찰에 화북조선청년군사정치간부학교(조선혁명군정학교, 타이항산군정학교)를 개교하였다.
1945년 5월 당시 타이항산지구 조선혁명군정학교의 생도 수는 293명이었는데, 그들은 수준에 따라 고급·중급·저급반으로 나누어 정치학습과 군사훈련, 학생자치와 문화구락부 활동을 하였다. 학교 남쪽으로는 1944년 이후 일본군 지역에서 탈출하여 의용군에 합류해 들어오는 조선청년들을 임시로 수용했다고 하는 토지묘(중국 민간신앙으로 토지신을 모신 곳)가 있다. 조선의용군 출신인 이섭이 남긴 회고에 의하면 낡은 절간을 보수해 만든 학교에서 대원들은 교탁이나 책걸상이 따로 없어 얇은 이불을 깔고 앉아 무릎 위에 필기장을 놓고 공부하였다고 한다.
난좡촌 인구는 약 4,000여 명으로 주변 마을의 2배 규모의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연혁을 알리는 비석(1986년 건립) 있으며 “조선의용대 주둔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중조한우의기념대”가 마을 광장처럼 사용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왼쪽에 조선혁명군정학교 건물이 있다. 조선혁명군정학교는 초등학교로 사용하다가 현재 난좡촌유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2년 초에 한단시에서 “조선의용군 총본부, 조선혁명군정학교 옛터”라는 안내판을 부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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