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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 열사기념관

사적지 종류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허베이성
문헌상
한글 하북성 섭현 석문촌 태항산 기슭
현지 河北省 涉县 石门村 太行山 山麓
역사적 의의
조선의용대원인 윤세주 및 진광화 등의 반제국주의와 한국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한단시에서 건립한 기념관
설명
타이항 산 일대는 조선의용대의 주력인 무정과 박효삼ㆍ최창익이 활동하던 곳이며, 중국의 팔로군 129사단(사단장 劉伯承, 정치위원 鄧小平)의 활동지역이기도 하다. 타이항 산은 팔로군 전방 총사령부가 소재한 곳으로, 팔로군 항일투쟁의 중심지였다. 1941년 6월 조선의용대 주력부대는 타이항 산에 도착하였다. 타이항 산은 조선의용대의 활동지역일 뿐만 아니라 화북조선혁명청년들의 교육의 장의 기능도 담당했다. 일본군은 1942년 5월 화북의 주력부대를 이동하여 팔로군 타이항 산 근거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였다. 이때 동원된 일본군은 약 4만 명이었으며, 전차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였다. 5월 초순부터 개시된 일본군의 ‘소탕전’이 중순을 넘어서 하순에 이를 즈음 적의 포위망은 최후의 일선까지 압축되어 팔로군 총사령부와 의용대 지대부가 있던 마전 조차 일본군의 대포 사격권 내에 포위당하였다. 팔로군 총사령부는 어느 한 지점을 공격ㆍ점령하여 위기의 땅에서 탈출하고자 의용대에 두 개 고지를 점령할 것과 포위당하고 있는 전군이 탈출할 때까지 그 고지를 사수할 것을 명하였다.
소탕전이 격렬하게 진행되면서 이에 대항하는 이른바 반소탕전 역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42년 5월 24일 팔로군 심장부인 전선총사령부에 일본군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조선의용대의 주축인 윤세주ㆍ김두봉ㆍ진광화는 ‘소탕전’이 진행되면서 일본군의 추격을 뿌리치면서 이동하였다. 하지만 1942년 5월 28일 새벽녘 윤세주와 진광화는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대치 중 총에 맞아 진광화는 그 자리에서 전사하였으며, 윤세주는 최채의 도움을 받아 피신하였다. 최채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나는 석정 동지와 나란히 행군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진광화가 걸어가고 있었답니다. (중략) 헌데 한참이나 미친 듯이 총질하던 놈들이 내가 죽은 줄 알았던지 사격을 멈췄습니다. 놈들이 떠나자 나는 석정이 뛰여가던 길을 따라가면서 살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허벅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석정을 발견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석정의 다리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마구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옷을 찢어 그의 상처를 싸매주려 하자 석정이 나를 밀쳤습니다. ‘그럴 새가 없소.’ 진광화 동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가보고 오오. 아래서 악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소. 빨리 가보오.”

윤세주ㆍ진광화의 장례식에는 팔로군 총사령관 주덕(朱德)이 추도사를 읽었다. 그는 숭고한 국제정신에 따라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조선의용대의 애국적 기개를 강조했다. 그는 국제주의 연대와 한국의 독립을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그의 인식에는 조선의용대의 5년간의 활동상도 크게 작용하였다. 또한, 그들의 희생이 한국과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며 조국해방을 위해 일치단결할 것을 호소하였다. 한중 공동 항일 투쟁과정에서 순국한 윤세주와 진광화의 모습은 중국인들에게는 무한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2005년에 건립되었으며, 독립기념관에서 2011년 전시지원을 통해 많은 한국인과 현지 중국인들의 애국교육 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기념관은 양국이 공동으로 항일투쟁사를 기념하는 데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