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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일본총영사관 터 (홍군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헤이룽장성
문헌상
한글 흑룡강성 하얼빈시 화원가 351호, 분투로 331호
현지 黑龙江省哈尔滨市 南岗区 花园街 351号
역사적 의의
안중근·김동삼·남자현 등의 독립운동가들을 구금하였던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건물
설명
하얼빈은 1896년 러시아가 동청철도(東淸鐵道) 부설권을 얻으면서 개발된 도시였다. 1898년 철도 기공식을 거행했을 당시만 해도 하얼빈은 송화강(松花江) 연변에 위치한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청철도 건설의 거점이 되면서 시가지가 조성되고 인구 늘어나면서 급격하게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1903년 동청철도 개통을 전후로 철도부속지가 확대되면서 러시아인, 중국인 인구가 늘어났다. 동청철도 개통 당시 하얼빈은 4개의 중심구가 있었다. 향방구(구시가)·남강구(신시가)·부두구(현 道里區 )·부가전(현 道外區 )이다. 이 가운데 남강구(南崗區, 구 秦家崗 )에는 관청가가 조성되었고, 강 주위의 습지대를 매립하면서 상점들도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자국 교민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남강구에는 일본을 비롯하여 프랑스·미국·독일·영국·스페인·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스웨덴·체코 슬로바키아·포르투갈·이탈리아 등 19개국의 영사관이 건립됐다. 일본총영사관은 1907년 3월 4일(또는 2월 5일) ‘义州街 27号(현재 花园街 351号 )’에 설치되었다. 1920년 이후 일제는 영사관 관저(현 외사판공실, 南岗区 果戈
里大街 298号 )도 마련하였다.
한국 독립운동가들에게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은 감시와 탄압의 상징이었다. 양환준(梁煥俊,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선전부장)·허형식 등 50여 명 한인들은 1930년 5월 1일 ‘메이데이’ 항일시위를 전개하면서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을 습격하여 항일의식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안중근·김혁(金爀)·김동삼(金東三)·남자현(南慈賢)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조사를 받고 수감되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의거 후 러시아 사법당국에서 예심이 결정되어 검사 밀레르에게 신문(訊問)을 받았다. 그는 예심이 끝나고 일시 구류되어 있다가 11시 경 이송되었다. 김동삼은 1931년 일제의 만주침공 직후 이원일(李源一)·남자현과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하얼빈에 잠입했다. 그러나 일경에 피체되어 수감되었다. 당시 피체되지 않았던 남자현은 1933년 12월 위만주국 주재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처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계획이 사전에 노출되어 일경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지하감옥에 수감되었다.
한편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은 1936년 경 ‘홍군가(红军街)’로 이전하였다. 이 건물은1924년 5월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25년 8월 준공되었다.

현재 화원소학교 건물은 1901년 건립되어 1907년부터 일본총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2001년 건물을 재건축하여 현재 화원소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후기 일본총영사관 건물은 ‘흑룡강합철대외경무집단공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이 건물은 일본의 남만철도회사 사무실로 함께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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