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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촌 윤동주 생가

사적지 종류 건물, 생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한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명동촌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龙井市 智新镇 明东村 尹东柱故居
역사적 의의
윤동주가 태어나서 15세까지 살았던 생가
설명
윤동주(尹東柱)는 1917년 12월 부친 윤영석(尹永錫)과 모친 김용金龍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은 1900년경 조부 윤하현(尹夏鉉)이 명동촌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것이었다. 윤동주는 어머니 김용의 오라버니인 김약연(金躍淵)이 세운 명동학교(明東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송몽규(宋夢奎)·문익환(文益煥) 등과 함께 수학하며 민족교육을 받았다. 1931년 졸업 후 용정 시내의 은진중학(恩眞中學)에 입학하자 1932년 4월 시내로 이사했다. 명동촌을 떠나면서 생가는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가 1983년 철거되었다.
용정 시내에서 윤동주의 거주지는 두 곳이었다. 첫 거주지는 두 번째 거주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고만 알려질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두 번째 거주지는 ‘영국더기(영국인들이 살던 언덕)’ 지역으로 제창병원 맞은편이었다고 한다.
윤동주는 은진(恩眞)·숭실(崇實)·광명학교(光明學校) 등을 거쳐 연희전문(延禧專門) 문과에 입학하였다. 1941년 연희전문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 1943년 7월 송몽규·고희욱(高熙旭) 등과 이른바 ‘재교토(在京都)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붙잡혀 2년형을 선고받았다.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복역 중 1945년 2월 순국했다.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尹永春)이 사망 전보를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가서 시신을 인도받아 화장했다. 1945년 3월 6일 합성리(合成里) 동산(東山)의 교회묘지에 안장했다. 묘비는 같은 해 6월 14일에 세워졌다.

1983년 철거되었다가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주선으로 1995년에 본채와 별채가 복원됐다. 2007년 윤동주 생가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중점문화재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2012년부터 용정시인민정부에서 본격적인 복원 사업을 추진하여 윤동주전람관이 새롭게 건립됐다. 생가에 정원을 조성하고 윤동주의 시를 새긴 비석을 세워 정화사업을 완료했다. 입구에는 조선족 이덕수가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표지석을 썼다. 현재 명동촌 일대가 개발되면서 윤동주 생가의 진입로가 바뀌었다. 이전에 ‘윤동주 생가’라고 쓴 입석이 있는 진입로는 사용되지 않고 명동학교 쪽의 장을 통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 관람 동선이 변경되었다. 합성리 동산에 위치한 윤
동주의 묘는 관리가 잘 되고 있다. 공동묘지이기에 참배의 목적이라도 대규모 인원이 방문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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