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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구(柳亭口)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연해주
문헌상
한글 연해주 우수리스크시 북방 70km 떨어진 시베리아철도 연변의 무치나야 역 부근
현지 Россия,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Черниговский район, село Черниговка, Станция Мучная 일대
역사적 의의
유인석이 일시 머물던 곳으로 연해주에서 봉밀산으로 들어가는 길목 정거장에 있던 한인마을
설명
유정구(柳亭口)는 남쪽으로 우수리스크(Ussuriysk)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로 향하며, 북쪽으로 봉밀산(峰密山)이 있는 흥개호(興凱湖)로 갈 수 있다. 서쪽으로는 하얼빈으로 향하는 철로를 따라 중국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독립운동가들은 무기구입시 유정구를 활용하였다. 유정구 역(무치나야 역으로 추정) 방면에서 서쪽으로 철로 연선을 따라 한·러 접경지대인 포그라니치니(Pogranichny)지역으로 이동하여 국경을 넘었다. 중국으로 넘어간 후에는 삼차구(三岔口)를 경유하여 왕청현(汪清縣) 나자구(羅子溝)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유정구의 규모 및 실태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그 중 연해주로 파송된 장로교 목사 최관흘(崔寬屹)의 기록이 참고할 만하다. 그는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각지를 방문하여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나섰다. 그가 돌아본 지역은 우수리스크·이만(Iman)·하바로프스크(Khabarovsk) 등이었다. 이 지역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정차하는 곳이었기에 유정구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11년 초 유정구를 방문하였다. 이 때 그는 유정구에 40호의 한인이 살며 모두 철도 인부로 일하고 있고,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이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고 하였다. 최관흘의 정보 이외에도 1916년 12월 소학교가 있었으며, 1918년 6월 우수리스크에서 개최된 제2회 전로한족대표회의에 8명의 대표를 파견하였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단편적이지만 유정구의 한인들이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가지는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922년 1월 6일 정보문서에는 유정구의 위치가 체르니코프카 마을 인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더불어 당시 유정구는 68호의 한인이 살고 있으며, 전체 인구는 288명이고 모두 비귀화인으로 조사되었다. 체르니코프카 마을을 탐문 중 주민인 세프치슨(sefchishn) 알렉산더(1956년생, 체르니코프카 3번 학교 교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체르니코프카지역에 밀·메밀 등이 풍부하게 재배되어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군인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1910년 밀가루 공장을 세웠다고 하였다. 또한 무치나야역은 원래 체르니코프카 역으로 불리웠으나, 역 부근에 공장이 세워지면서 역 이름이 무치나야(밀가루)로 바뀌었으며 마을의 중심도 역과 공장주변이 되었다고 증언해 주었다. 그리고 역무원이자 기관사였던 아버지(1920년생)에게 1937년 강제이주 전까지 쌀을 가공하는 일은 한인이 담당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한 1937년 강제이주되었던 한인들 약 15가구가 1990년 마을로 돌아왔는데 현재 모두 사망하였다고 하였다. 마을 주변을 탐문하였으나 체르니코프카마을에서 초기 한인마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유인석과 관련한 내용도 확인할 수 없었다. 체르니코프카 마을을 비롯하여 연해주지역 철도 주변의 한인마을을 포괄적으로 조사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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