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통합 검색

전체메뉴

지역별 사적지 정보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보세요!!

> 지역별 사적지 정보 > 러시아

이갑 묘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연해주
문헌상
한글 연해주 우수리스크시 동북쪽 외곽 식용유 마가린 공장 자리
현지 Россия,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Уссурийск, Волочаевская улица, 120 일대의 마가린 공장 부지
역사적 의의
1917년 추정(秋丁) 이갑이 서거 후 안장된 묘역 터
설명
이갑(李甲, 1877-1917)은 러시아 각지에서 한인지도자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근육마비의 괴질을 앓고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에 나섰다. 병은 러시아 페테르부르크(Petersburg)에서 활동할 당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국제정세를 살피며 언론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마비 증상을 겪었던 것이다. 이후 마비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반신 불구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베를린(Berlin)과 파리(Paris) 등지를 돌며 병을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완치하지는 못했다.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치타(Chita)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시베리아 지방총회 제2대 총회장에 임명되었으며, 『대한인정교보』 발행과 밀산(密山)에 설립된 무관학교 사업을 지도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12년 12월 이갑은 요양을 위해 중국 길림성(吉林省) 목릉(穆陵)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곳에서 안중근 가족과 가깝게 지내며 도움을 받았으며, 부인과 딸(이정희)이 국내에서 목릉으로 이주해 오면서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에 병이 일시 호전되어 활동을 재개하기도 하였다. 최재형)崔在亨)·이상설(李相卨)·이동녕(李東寧)·이동휘(李東輝)·김이직(金理直) 등은 그를 위해 의연금모집 발기회를 결성하고 대대적인 의연 모집운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갑은 거주지를 우수리스크Ussuriysk로 옮겼다.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관계로 발전하면서 동청철도(東淸鐵道) 연선인 목릉까지 수색을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수리스크에는 이동녕·이상설·정창빈 등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이갑은 다양한 계열의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1917년 4월 투병 중이던 이상설이 순국하였고 이갑의 병세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17년 6월 13일 41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유해는 우수리크스 시내 뒷산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영결식에는 이동녕·원세훈(元世勳)·안정근(安定根)·이강(李剛) 등이 참석하였다.

이갑의 묘는 1990년 마가린 공장 및 식용유 공장이 생기면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이곳이 공동묘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묘지석 몇 기가 공장 부근에 남아있다.

지도보기   인쇄   목록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