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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 고려사범전문학교 (고려(조선)교육전문학교)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연해주
문헌상 보로실로프시 블바르나야 41번지
한글 연해주 우수리스크시 아게예바 거리 75번지
현지 Россия,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Уссурийск, улица Агеева, 75, Приморский краевой колледж культуры
역사적 의의
1920-1930년대 우수리스크의 대표적인 한인 교육기관
설명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 연해주지역 한인들은 대부분 러시아 공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한인들만 소수민족을 위한 학교에서 러시아어로 교육 받았다. 러시아혁명 이후 국가 전반에 걸쳐서 개혁이 실시되어 소수민족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에 1918년 고려족중앙총회(高麗族中央總會)의 주도로 최초의 조선인 사범학교가 설립될 수 있었다. 첫해에는 본과가 아닌 입학준비를 위한 예비과정 학급 2개 반이 개설되었고 러시아어와 고려어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이 시기 연해주 및 시베리아지역은 러시아 내전과 일본군 간섭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러시아 백군과 일본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는 동안 학교가 폐쇄당하기도 하였다. 학교는 1920년 본과 1개 반과 예비과정 1개 반으로 다시 열렸으며 조선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도 다닐 수 있었다.
1923년 소비에트정권 수립 이후 우수리스크(Ussuriysk)에는 고려인 교원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극동 학무부”는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사범전문학교(소왕령 고려사범전문학교 또는 고려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직접 관할하였다. 가을에는 학교내에 “고려과(조선과)”가 개설되었다. 신입생은 7년제 과정(러시아 중등학교 2학년 수준)을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하였다. 개교 당시에는 “고려국어, 지리 역사” 과목만이 고려어로 강의되었고, 다른 과목들은 러시아어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듬해인 1924년 가을, 고려과는 전문교육기관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7년제 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1926년 7월 고려과는 개교 3년 만에 처음으로 졸업생 10여 명을 배출했다. 1927년 고려과는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사범전문학교의 부설기관에서 독립하였다. 이로써 3월 6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고려사범전문학교(고려사범학교)’로 개교하게되었다. 이후 우수리스크 시가 1935년 보로실로프(Voroshilov)란 명칭을 사용하였기에 ‘보로실로프 고려사범전문학교’란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고려사범학교는 1927-1936년 중반까지 정규과정 졸업생 324명, 일급학교 재교육교원 52명, 교원강습 수료자 455명 등 총 921명의 전문 교육자를 배출했다. 졸업자들은 초급중학교로 파견되거나 레닌그라드 어학대학·원동조선인사범전문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하였으며, 문화조직 및 정치기관 등에서 일하거나 번역·출판·기자·미술가·작가·시인·배우 등 다양한 업종으로 진출하였다.

1900년 건물이 완공되었으며 처음 출판사로 사용되었다. 이후 건물을 확장하고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921-1922년 러시아 내전 당시 재정이 어려워지자 민간인들이 모금하여 운영을 지원하였다.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자 교육 프로그램이 다소 변경되었으며, 소비에트 당원이 한국말을 가르킨다는 이유로 문을 닫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1926년 소비에트 정부에서 현재 건물을 증축하여 고려인전문학교가 세워지자 러시아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으며, 문맹타파운동을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당하면서 운영이 어려워졌다. 현재 연해주 예술문화 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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