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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중앙공회당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일본
대륙 아시아 지역 오사카부
문헌상
한글 오사카부 오사카시 기타구 나카노시마1쵸메1-27
현지 大阪府 大阪市 北区 中之島1丁目1–27
역사적 의의
재일한인들의 조선인 학살 규탄대회, 노동운동 관련 행사 등이 열렸던 곳
설명
1920년대 재일조선인 단체의 활동 가운데 연대 투쟁은 기념일투쟁(3·1운동기념, 관동대지진학살기념, 국치일기념, 메이데이기념), 조선인 학살 조사 및 규탄운동, 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운동, 국내운동 지원, 일본사회운동지원, 상애회(相愛會) 박멸운동이다.
이중 1920~1930년대 일관되게 전개되었던 재일조선인의 민족운동은 ‘기념일’ 투쟁이다. 대표적인 조선인학살조사 및 규탄운동은 관동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학살규탄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일본사회의 조선인차별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선인 학살규탄운동은 오사카 나카노시마(中之島)에서 김태엽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이 일어난 직후 도쿄를 비롯한 간토(關東)지역 한인사회는 심각한 충격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먼저 학살사건의 충격으로 많은 한인이 귀국하였고, 일본지역에서 한인으로 살아가는 자체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인사회를 결속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인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추도회이다. 당시 지역 이외 다른 지역에서는 조선인학살사건이 소문으로만 어렴풋이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조선인학살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리고 규명을 촉구하는 활동은 한인사회의 결속과 한인의 생존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1923년 12월 동경조선노동자동맹회는 동경일선일화청년회관에서 ‘재동경조선인대회’를 개최하고 ‘조선인박해사실조사회’를 결성하였다.
1924년 3월 10일에 오사카동맹회가 주최한 ‘조선인 학살 규탄 대회’가 이곳 나카노시마 중앙공회당에서 열렸다. 이때 한인 7000여 명이 참가하고, 김태엽 및 30여 명의 연사가 연설하였다. 이 대회는 오사카동맹회가 주최했으나, 도쿄동맹회의 결정에 따라 김태엽이 파견되어, 오사카에서 대중을 동원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인 학살(간토대지진)의 진상이 간사이(関西) 지방에까지 극명하게 알려질 수 있었다.
1924년 일본노동총동맹이 주최한 메이데이행사도 이곳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 대판동맹회는 회원 500명이 ‘동척이민(東拓移民) 철폐, 이상적 사회 건설’의 표어를 앞세우고 참가하였다. 여기에서 김인수가 오사카동맹회 대표로 연설을 했다.
1930년 4월 21일에는 동아통항조합(東亞通航組合, 선박협동조합)이 ‘우리는 우리 배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설립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시기 일본 오사카와 제주도를 오가는 선박을 운영하는 회사가 독점적 우위로 운임을 올리고 한인에 대한 대우를 나쁘게 하는 등 폐단이 있었다. 이에 오사카 거주 한인들은 우리들 스스로 선박을 운영하겠다는 결의를 하게 되었다. 김달준과 문창래를 비롯한 제주도 출신의 재일한인이 중심이 되어 동아통항조합이 만들어졌다. 1929년 4월, 김문준은 제주도민 유지간담회를 통해 제주통항조합준비회 조직을 결정하고, 1930년 3월 25일에 기관지 『제주통항조합뉴스』(한글판)를 발간하였다. 이어 4월 21일에는 나카노시마 공회당에서 동아통항조합 설립대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해방 후인 1947년 8월 15일에는 해방 2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건물 위에서 전단을 뿌리고, 신문을 배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여러 민족단체에서도 플랜카드를 가지고 참석해 함께 행진하기도 하였다.
1918년 건립된 이후 오사카지역 한인들이 민족운동을 하기 위한 집회장소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공연 및 졸업식 등을 위한 대관을 하고 있으며 복합문화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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