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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 발간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프랑스
대륙 유럽 지역 프랑스
문헌상
한글 파리 오스만 파리 8/93 블방드, 비엔느 뤼 13
현지 13, rue de Vienne, Paris 8/93, Boul. Haussmann, Paris
역사적 의의
유럽지역에 한국독립을 선전하기 위해 간행한 《자유한국》의 발간지이자 후기 파리위원부가 있었던 건물
설명
파리위원부에서는 1920년 5월부터 유럽지역에 한국의 독립을 선전하기 위해 《자유한국》을 매월 1천 부씩 발간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파리위원부가 설립된 이후 선전과 홍보를 위해 1920년 4월 통신국(Bureau D'Information Coreen)을 병설하였다. 1919년 4월부터 유럽 언론기관에 한국독립운동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자 서간 형식의 「통신전」을 발행하였고, 5월 10일에는 평화회의 의장 클레망소를 비롯하여 평화회의 이사회 위원들과 각국 정부에 불어로 작성된 「공고문」을 보냈다.
1920년 5월부터 통신국에서는 《자유한국》을 월간으로 발행하기로 하였다. 제1호에 창간사라고 할 수 있는 「선언」에 의하면 “이 월간지의 제목이 밝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투쟁 목표는 조국의 독립에 있다. 자유한국!”이라고 하여 발간 목적을 밝리고 있다. 그해 6월에 발간된 제2호에는 ‘LA COREE LIBRE’라는 겉표지에 “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구호와 태극 마크가 삽입되어 있다. 사무실 주소가 파리 8구 비엔느 거리 13번지(13, rue de Vienne, Paris)로 되어 있으며, 인쇄는 파리 9구 밀턴가의 ‘예술과 운동’ 인쇄소에서 하였다.
《자유한국》의 제4ㆍ5호와 제11ㆍ12ㆍ13호는 합집으로 발행되었다. 파리위원부의 업무는 황기환이 혼자 담당하면서 인력과 재정의 부족으로 1921년 5월호까지만 발간되었다. 《자유한국》은 프랑스어에 능숙한 인물이 편집을 맡았는데, 일제의 정보 보고에는 편집에 중국인 사동발(Scie Ton Sa)과 마담 마티앙(Mathian)이 조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과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상을 소개한 잡지로 상당부분이 유럽과 미주의 신문ㆍ잡지 기사를 발췌하여 이용하였다. 《자유한국》은 한국의 참상을 알리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일제 점령하에 있던 식민지 상황을 행정조직ㆍ교육ㆍ사법부ㆍ교통ㆍ정치적인 면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의 학생시위 뿐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 그리고 한국의 독립을 위한 세계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잔학성을 고발하고 있다. 추가로 3ㆍ1운동 독립선언서와 1876년 일본과 한국 간에 맺은 조일수호조규의 내용도 싣고 있다.
「구주의 우리 사업」이란 글에 의하면, “최초에 기종(幾種) 신문을 연락하여 우리 사정을 소개하다가 민국 원년 9월에 한국의 독립과 평화란 명목으로 월보체제(月報體裁)로 일차 발행하고, 이후에는 간간 사실 있는 대로 일폭지(一幅紙)에 통신전(通信箋)을 발행하다가 민국 2년 4월부터 매달 말 1회씩 《자유한국》이라는 명칭으로 잡지를 발행하여 현금 계속 중인 바, 본 잡지는 구주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 각 중요처에 분배하여 오는바 기히(旣) 사회의 환영을 많이 받았고, 또 각 신문에 전재(轉載)된 열도 다(多)하다. 장래 거액의 재정이 유(有)하여 다른 별 방침(別方針)이 생기기 전에는 아직까지 경험한 바론 약소(約少)한 재력으로 착실한 효과를 수(收)하기에는 차(此)에서 더 적의방법(適宜方法)이 무(無)한 줄로 사유하노라”라고 하고 있다.
《자유한국》이 발행되었던 장소는 비엔느가 13번지는 없어졌고, 9~15번지까지가 합쳐져서 하나의 건물이 되었으며, ‘CIPAV’라는 은퇴자 혹은 연금 수령자들의 보험회사의 사옥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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