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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친우회 사무국 및 사동발 거주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프랑스
대륙 유럽 지역 프랑스
문헌상
한글 파리 오스만 블방드 93
현지 93, Boul. Hausssmann, Paris
역사적 의의
프랑스 내 한국 독립운동의 후원을 목적으로 결성된 한국친우회의 사무국이 있었던 곳
설명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유럽 열강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파리위원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파리위원부가 중심이 되어 프랑스에서 한국독립운동을 후원할 조직으로 한국친우회를 결성하였다.
한국친우회 사무국의 임원은 임기가 2년으로 의장에는 마랭(Louis Marin), 부의장에는 올라드, 페르디낭 뷔쏭(Ferdinand Buission), 쥐스탱 고다르(Justin Godat), 레위스 브륄(LewisBruhl), 베르퉁(Berthon)이 맡았다. 사무국장에는 끌로드 파레르(Claude Farrere)와 사동발(謝東發)이, 재무국장에는 에밀 블라베(Emile Blavet), 사무차장에는 마티앙(Mathien)이 각각 임명되었다. 그리고 선전활동을 전담할 활동위원회가 있었는데 이 위원회에는 상바(Sembat) 마리우스(Marius)ㆍ세르메(Sermet)ㆍ피에르 밀(Pierre Mille)ㆍ앙드레 로베르티(Andre Roberty)ㆍ샤를르 지드(Charles Gide)ㆍ에드몽 베나르(Edmond Besnard)ㆍ메나르 도리앙(Menard d’Orian)이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활동을 도와주고, 한국친우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사동발은 중국계 프랑스인으로 1880년 12월 5일 파리에서 이밍(Ea-Ming)과 드 랄리에 디안(de Rallier Diane)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외교관으로 중국에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매우 화려한 사교생활을 영위하였다. 또한, 파리대학에서 법학박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개업하지 않았다. 그는 1912년 10월 11일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였고, 1917년 6월 19일 파리에서 교부된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한국친우회는 7월 10일 비영리사회단체로 내무성에 정식으로 등록하였다. 한국친우회 사무국은 파리위원부를 도와주었던 사동발의 아파트로 정하였다. 사동발이 살았던 오스만가 93번지는 당시에도 부르주아들이 사는 곳으로 그는 연간 4천 프랑의 세를 내며 아파트의 2~3층 약 160평 정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동발은 한국친우회의 사무국장을 맡았으며, 《자유한국》의 발행에 필요한 자금 일부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사동발의 거주지는 한국친우회의 사무국이자 《자유한국》을 발행하는 자금의 공급처이기도 하였다.
사동발이 거주하던 당시에도 이곳은 부촌이었으며 현재도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6층 건물로 1층은 왼쪽에 그랑 마리니에(Grand Marinier) 주류판매점이 있고, 왼쪽에는 까드로(Quadro, 불어로는 꾸아드로)라는 수제 맞춤가구 전문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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