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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국제연맹 본부 건물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스위스
대륙 유럽 지역 스위스
문헌상
한글 제네바 파퀴스 뤼 52(윌슨 궁)
현지 Rue des Paquis 52, Geneva
역사적 의의
1933년 1월 임시정부의 특명전권수석대표로 제네바에 파견된 이승만이 『만주의 한인들(The Koreans in Manchuria)』이라는 선전 홍보용 책자를 제출하여 일제의 만행을 고발규탄하고, 한국의 독립만이 극동에서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고 역설한 곳
설명
이승만이 제네바를 찾아가게 된 것은 1931년 9월부터 개시된 일본군의 만주침략을 규탄하는 국제회의가 1933년 초에 국제연맹본부에서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회의야말로 한국의 독립문제를 다시 한 번 세계여론에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 제네바행을 서둘렀다. 이승만은 상해 임정과 협의해 1932년 11월 10일 자로 특명전권 수석대표의 자격을 부여받은 후, 미 국무장관 스팀슨(Harry L.Stimson)이 서명한 ‘외교관 여권’을 얻어 1932년 12월 23일 뉴욕을 떠났다.
그는 1933년 1월 제네바에 도착해 『만주의 한인들』이라는 선전 홍보용 책자를 국제연맹에 제출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 규탄하고, 나아가 한국의 독립만이 극동에서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1월 4일 제네바에 도착한 이승만에게 일제 침략의 규탄을 중국대표단원들에게 호소하게 도움을 준 인물이 서영해였다. 파리의 <한국대표부(Agency Korea)>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제네바로 와서 국제연맹회의에 모여든 중국대표단원들―W.W.Yen·Kuo Taipchi·V.K. Wellinton Koo·victor Hoo·Ko King-chen―과 이승만의 회담을 주선하여 그들과 함께 일본의 대륙침략을 손가락질·공격하는 외교활동을 펼 기회를 만들었다. 또한, 서영해는 이승만의 제네바에서의 외교활동에 지속해서 함께 참여하여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이승만이 이러한 외교활동의 목표는 국제연맹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도록 하여 그 회원권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위시한 각국 대표들이 이 회의에서 한국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이승만은 일제가 급조한 만주국의 괴뢰성을 폭로하고 만주에 사는 ‘100만’ 한인의 자율권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외교를 폈다. 2월 8일 그는 한국인의 주장을 담은 공한을 국제연맹 회원국 대표들과 세계 주요언론사 기자들에게 우송·배포하였다.
제네바에서 그는 세계 굴지의 외교관 및 언론인과 폭넓게 교제하면서 동양평화의 담보로서 한국독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승만의 이 같은 단신 외교는 2월 24일 국제연맹 본회의에서 일본의 만주침략을 규탄한 내용의 ‘리튼 보고서(The Lytton Report)’가 채택되고 이어서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하는 데 간접적으로 이바지하였다. 이승만의 국제연맹 외교활동 이후에도 서영해는 1936년 임시정부의 주법특파위원(駐法特派委員)으로 선임되어 유럽 외교무대의 중심지인 파리와 제네바에 집중되어 있는 각국 신문기자들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알리고자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920년부터 1937년까지 국제연맹 본부로 사용되던 건물은 현재 제네바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파퀴스 거리 52번지의 일명 ‘윌슨 궁’이다. 이 건물은 1987년 화재로 건물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그 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놓았다. 현재는 유엔의 산하의 국제인권연합위원회 고등판무관 사무실(Office of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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