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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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조선청년전시복무단 결성지 터
사적지 종류 | 장소 | 국가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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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 아시아 | 지역 | 후베이성 |
문헌상 | 영청로 37호 武漢市 永淸路 37號 | ||
한글 | 호북성 무한시 영청로 | ||
현지 | 湖北省 武汉市 永清路 |
- 역사적 의의
- 1938년 최창익, 김학무 등이 조직한 단체
-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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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전시복무단(朝鮮靑年戰時服務團)은 1938년 7월 조선민족혁명당에서 김원봉의 노선에 반대하던 청년들이 탈당하여 별도로 결성한 조직이다. 조선청년전시복무단은 9월 조선청년전위동맹으로 개칭하여 정치단체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들은 최창익·허정숙·김학무·김창만 등 49명으로 이들은 즉각적인 중일전쟁의 참전을 주장하였다.조선청년전시복무단원들은 무한(武漢)에서 항일선전활동을 전개하면서 동북지역으로 북상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당시 이들은 깃발을 들고 집회장소, 시위행렬의 앞, 부두, 정거장, 가두에서 연극·노래·만화·벽보·연설 등을 통하여 중국인들의 항전의식을 고취했다. 이외에도 중국군에 협력하여 시내 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그러나 동북진출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한의 팔로군 판사 처의 도움을 얻어 동북으로 진출하고자 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던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이들이 동북으로 진출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조선민족혁명당에 복귀할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또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학무는 동북진출을 비판하였고, 단장인 최창익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선청년전시복무단은 약 4개월의 독자적인 활동을 마무리하고 조선민족전선연맹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들은 조선의용대 제2지대로 편입되어 조직상의 안정을 보이게 되었다. 김학무는 조선민족전선연맹의 이사로 선발되었고 이 단체의 지도 아래에서 항일투쟁에 나섰다. 조선청년전시복무단의 활동은 중국 관내의 한인군사조직의 결성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이것이 조선의용대의 창설에 이바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청년전시복무단이 자리 잡았던 영청로는 도로 건설로 모두 없어졌다. 현재 공상은행이 위치한 자리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