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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조선민족전선연맹 사무소 터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후베이성
문헌상 대화가, 팔일삼가 15호
한글 호북성 무한시 승리가 25호
현지 湖北省 武漢市 江岸區 勝利街 25號
역사적 의의
1937년 김원봉, 김성숙, 유자명이 결성한 단체
설명
1937년 7월 노구교(蘆溝橋)사건을 시작으로 전면적인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8월 이후 전세가 중국 측에 불리하여 상해(上海)가 함락될 상황이 되자 독립운동 진영은 남경(南京)으로 이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 진영 자체 내에서도 모든 역량을 결집해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하자는 주장이 대두하였다. 그 결과 우익진영은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좌익진영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였다.
조선민족전선연맹은 1937년 11월 한구(漢口)에서 조선민족혁명당·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혁명자연맹의 3단체가 조직한 연합전선이었다. 김성숙(조선민족해방동맹)은 먼저 유자명(조선혁명자연맹)과 통일전선의 조직방식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들은 단체본위 조직원칙에 합의하였다. 이는 두 단체가 세력이 작아 민족혁명당과 연합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김원봉(민족혁명당)은 기존의 단체를 해체하고 개인본위 조직원칙에 따른 강력한 단일당 구성을 주장하였다.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하에 단체를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 간의 견해 차이는 쉽게 좁혀질 수 없었다. 그러나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진영이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로 결집하여가자 이와 대등한 좌파 연합체 결성을 서둘러야 했다. 이에 결국 단체본위의 원칙에 의거한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조직될 수 있었다.
조선민족전선연맹은 무한으로 이동한 후 사무소를 한구 일본조계 813가(현재의 승리가) 15번지에 설치하였고 구성원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합숙하였다. 대표적으로 조선민족혁명당의 김원봉·박차정 부부, 조선청년전위동맹의 최창익·허정숙 부부, 조선민족해방동맹의 김성숙·두군혜 부부, 조선혁명자연맹의 유자명·유칙충 부부가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2002년 조사에서 조선민족전선연맹 자리라 알려져 있던 장춘가 77호는 옳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화가 813가 15호'가 아니라 대화가 그 자체가 '813가'이며, 그것의 15호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당시 위치가 승리가 15호임이 증명되었다. 2014년 실태조사시 15호는 건물 주소가 남아있지 않고 21호 또는 25호로 통합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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