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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류자명 거주지 (호남농업대학)

사적지 종류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후난성
문헌상
한글 후난성 창사시 푸룽구 호남농업대학
현지 湖南省 長沙市 芙蓉區 湖南農業大學 逸苑小区 內 柳子明故居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이자 독립운동가 류자명이 동상과 전시실
설명
류자명(柳子明)은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다. 1894년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충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원농림학교에 진학했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운영했던 연통제와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귀국한 뒤 아나키즘을 수용하였다. 1921년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이동하여 신채호(申采浩)·이회영(李會榮) 등과 교류했다. 1922년 톈진(天津)으로 건너가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고, 1924년 이회영·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圭) 등과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조직하여 아나키스트로서 활동하였다. 이후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 등 한인 아나키즘 조직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인생의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 난징(南京)에서 농장과 교육계에 투신하여 독립운동과 농학자로서의 길을 병행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30년 상하이 입달학원(立達學院)에서 농학자로서 활동하면서 중국인 아나키스트와 연합하여 한·중 공동전선의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아나키스트인 쾅후성(匡互生)이 설립한 입달학원은 농촌교육과의 교무주임인 천판위(陳範豫)를 비롯하여 마종롱(馬宗融)·뤄스미(羅世彌) 등이 모두 아나키스트였다. 1934년 청룡산의 농장에서 학생들과 농사를 지었고, 난징건설위원회 동류농장(東流農場)에서 원예를 가르치는 등 꾸준히 농학자로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이러한 농장과 교육 현장의 경험은 해방후 그가 중국에서 농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
류자명은 임시정부와 재차 인연을 맺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일어나자 류자명은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의 결성에 기여했다. 이후 치장(綦江)에서 개최된 7당통일회의에 조선혁명자연맹(朝鮮革命者聯盟)의 대표로 참여하였다. 1942년 좌익 진영의 임시의정원 참여를 계기로 재차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한국광복군행동9개준승(韓國光復軍行動九個準繩) 수정위원으로 선임되어 한국광복군의 자주성과 주체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함께 1943년 3월 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학무부 차장에 선임되어 충칭(重慶)에 거주하고 있던 독립운동가 자녀들의 교육과 학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도 했다.
류자명은 푸젠성福建省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직후 타이완(臺灣)으로 건너가 농림처 기술실 책임자를 엮임한 뒤 1950년 6월 귀국을 위해 타이완을 떠나 홍콩에 당도했으나, 6·25전쟁으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귀국이 미뤄지면서 후난성(湖南省) 부성장 청싱링(程星齡)의 도움으로 창사에 있는 후난대학(湖南大學) 교수로 부임하여 농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류자명은 중국 벼농사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와 포도 등 원예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1985년 창사에서 서거하였다. 2012년 류자명이 재직했던 호남대학(현 湖南農業大學)에 ‘류자명고거진열실(柳子明故居陳列室)’과 흉상이 개관·설치되었다.

전시실은 류자명이 후난대학현 호남농업대학 근무 당시 거주했던 건물에 만들어졌으며, 2014년 장사시 문물보호단
위로 지정되었다. 흉상은 후난농업대학 내 후난농림대학동물의학원 앞과 동물기술과학학원 뒤편에 위치해 있다.
흉상의 기록되어 있는 내용 중 ‘中州人’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忠州人’으로 수정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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