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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중한호조사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후난성
문헌상
한글 후난성 창사시 개복구 중산로 74호
현지 湖南省 長沙市 开福區 中山路 74號
역사적 의의
1921년 3월 장사(長沙)에서 중국의 모택동(毛澤東) 등과 한국의 이우민(李愚珉) 등이 조직한 한중공동항일연합단체의 하나
설명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의 유력인사들과 공동 항일단체를 조직하고자 하였다. 이에 중국 각계의 유명인사들과 공동발기하여 장사, 한구, 상해, 광주, 중경, 성도, 북경 등지에서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를 설립하였다.중한호조사는 본부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자리한 상해에 두었고, 각 성(省)에 수시로 연락하면서 효과적인 활동을 지원하였다. 본부조직은 한중 양국인 각 10여 명이 평의원을 맡아 운영하였는데, 한국 측에서는 김홍서·김규식·이탁·여운형·김문숙·한진교·윤현진·서병호·김철 등이 선출되었다.
중한호조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이는 문화예술교류와 선전활동으로 진행되어 강연·회담·신문 홍보 등으로 나타났다. 중한호조사 회원 중에는 한국 측의 선전원·특파원과 중국 측의 문화계·교육계·언론계 나아가 정계·상업계의 유명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국제주의 통일전선의 수립을 목적으로 일제의 침략에 대한 한·중 국민의 공동 대응과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였다. 양국 지도자들의 행동과 사상에는 일정한 차이가 존재하였으나, 교류를 지속하여 우호 관계가 유지되면서 양국의 입장은 점차 적극적인 항일로 일치하게 되었다.중한호조사 가운데 가장 일찍 설립된 곳은 장사였다. 1921년 3월 중순에 설립되어 한국 측에서는 이우민·황영희·이기창이 참여하고, 중국 측은 역배기·하민범·구오·모택동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설립대회에서 명칭·취지·입사조건·조직구도·경비 출처 등의 내용을 포함한 ‘호조사 약칙’을 정하였다.
또한 “한중 양국 국민 간의 감정을 깊이 하고 양국 국민의 사업을 발전” 시키는 것을 취지로 하여, “한중 양국 국민으로서 남녀, 종교를 막론하고 본사의 취지에 동의하며, 2명 이상의 회원들 소개가 있으면 바로 가입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는 양국 국민의 상호이해를 돕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특히 일제에 공동 투쟁하는 업무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직 당시 건물은 선산학사로 추정된다. 문헌자료를 확보해서 이곳에 기념 동판을 부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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