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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김구 총상 치료지 (상아의원)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후난성
문헌상
한글 후난성 창사시 개복구 상아로 87호 중남대학 상아의원
현지 湖南省 长沙市 开福区 湘雅路 87号 中南大学 湘雅医院
역사적 의의
김구가 창사 남목청에서 피격을 당한 후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던 장소
설명
1938년 5월 창사(長沙) 남목청(楠木廳)에서 김구가 피격을 당했다. 당시 김구(金九)는 남목청에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 대표로 재건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대표들과 통합을 논의하고 있었다. 회의 도중 조선혁명당 간부였던 이운한(李雲漢)이 난입하여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김구는 이운한의 피격으로 중태에 빠지고 말았다. 피격 직후 김구는 인근의 상아의원(湘雅醫院)으로 후송되었다.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서 최초 명칭은 아례의원(雅禮醫院)이었다. 의사들은 그의 상태를 보고 소생할 가망이 없어 보이자 응급처치도 하지 않은 채 장남 김인(金仁)과 안공근(安恭根)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보냈다. 하지만 4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존해 있자 수술을 시작했고, 수술을 통해 기적처럼 생존하였다. 김구는 이곳에서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에도 탄환이 대혈관을 압박하여 다리가 마비되는 후유증을 겪었다. 당시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의 장제스(蔣介石)는 여러 차례 전문을 보냈고, 퇴원 뒤에는 치료비를 보내주었다.

상아의원은 1906년 아례의원으로 개원한 뒤 1915년 상아의원으로 개칭했다. 이후 호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현재는 중남대학교(中南大學校)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변모되었다. 2005년 창사시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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