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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충칭 청사 (연화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충칭
문헌상
한글 중경시 유중구 칠성강 연화지 38호
현지 重庆市 渝中区 七星岗 莲花池 38号
역사적 의의
충칭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
설명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중국 충칭(重慶)으로 청사를 옮겼다. 청사는 정부 각료들이 모여 국가의 대소사를 협의·논의하고 독립운동을 총괄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충칭지역에 임시정부의 첫 번째 청사는 양류가(楊柳街)에 있었다. 양류가에 소재했던 임시정부 청사는 일제의 폭격 등 여러 이유로 석판가(石板街)와 오사야항(吳師爺巷)으로 옮겨갔다. 이중 오사야항은 전형적인 2층 목조가옥으로 70여 칸의 큰 규모였다. 이곳은 김구(金九)가 『백범일지』 하권을 저술한 장소이기도 하다. 1944년 하반기 임시정부는 청사를 연화지(蓮花池) 4호로 옮겼다.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이곳에서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충칭지역에서 임시정부 청사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연화지가 유일하다. 양류가와 석판가에 위치한 청사는 일제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오사야항 청사는 1995년 당시 원형이 변형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95년 충칭시 문화국에서는 청사 건물 입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라는 표지석을 설치하였고, 건물의 노후에 따라 독립기념관에서 청사의 실측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2년 중국 정부에서 주변을 정화하고 건물을 복원하기로 결정했으나, 현재 오사야항 청사는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 건립 공사가 진행 중임을 확인하였다.
연화지 청사는 충칭시기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해방을 맞이했던 장소, 현재까지 청사의 원형이 유지된 건물로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청사 건물은 1929년 건립되어 호텔로 사용되었다. 이후 장제스(蔣介石)의 도움으로 1944년 하반기부터 임시정부가 이곳을 사용했다. 청사건물은 해방 이후 여관·학교·주택 등으로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부분적인 변형과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1994년 6월 독립기념관과 충칭시 대외인민우호협회가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복원협정을 체결하였다. 1995년 8월 11일 복원을 완료하고 ‘중경대한민국 임시정부구지진열관’을 개관했다. 이후 독립기념관은 충칭시 정부와 협조하여 2000년과 2009년에 각각 건물에 대한 보수와 전시 보완을 실시하였다. 2019년에는 ‘중경대한민국 임시정부구지진열관’ 자체적으로 전시내용을 대대적으로 교체했다. 청사는 임시정부를 비롯한 한국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전시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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