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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한국독립당 사무소 (사흠방)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저장성
문헌상 학사로 사흠방 40. 41호(학사로 사흠방 34호라는 기록도 있음)
한글 절강성 항주시 학사로 32호 근처
현지 浙江省 杭州市 学士路 32号 附近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 한국독립당이 항저우로 이동한 뒤 사무실로 사용했던 건물
설명
1930년 1월 25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창당되었다. 한국독립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을 중심으로하는 민족주의 세력들이 모여 결성한 근대적 정당(政黨)이었다. 또한 임시정부와 표리일체 관계를 이루며 임시정부를 운영하는 기초세력이자 여당으로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현대사에서 정당정치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 한국독립당이 조직된 것이었다. 한국독립당은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 내 마랑로(馬浪路) 보경리(普慶里) 4호에서 창당되었다.
한국독립당의 조직은 중국공산당(中國國民黨)과 공산당의 조직체제를 절충한 집단지도체제의 중앙집권제였다. 조직은 중앙당부와 구회(區會)·지회(支會)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당의 중앙 조직은 이사장을 최고직으로 삼는 이사회가 있었고, 최고 의결기구로 당대표대회가 있었다. 초기 중앙조직은 이사장과 이사, 그리고 비서로 이루어졌고, 초대 이사장에는 당시 임시정부 국무회의 주석이었던 이동녕(李東寧)이, 이사에는 조완구(趙琬九)·김철(金澈)·안창호(安昌浩)·이시영(李始榮)·김구(金九)·조소앙(趙素昻)이 비서에는 엄항섭(嚴恒燮)이 선임되었다. 초기 중앙조직이 모두 임시정부의 주요 간부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한국독립당은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기초정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독립당의 집행기구는 총무부·재무부·내무부·선전부·비서부로 구성되었다. 집행기구의 책임자는 이사 중에 선임되었으며, 주임 또는 부장으로 칭했다. 하부기구로는 1933년 현재 상하이 지역에 5개의 구회와 난징 지역에 난징구(南京區)·난징특구(南京特區) 등 7개의 구회가 조직되었고, 광둥(廣東)에는 지부가 설치되었다. 윤봉길(尹奉吉) 의거 이후 항저우(杭州)로 당 본부를 이전한 이후에는 이전보다 많은 구회와 지부를 설립하였다. 특히 구회에서는 매달 두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개최하여 당의 활동내용 및 일제의 전쟁준비 상황 등에 대한 보고와 토의, 그리고 관내에 거주하는 한인들 간의 분쟁 해결방안을 등을 논의했다.
한국독립당은 비밀조직으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결성 초기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존재가 외부에 드러나게 된 시점은 1930년 10월이었다. 한국독립당은 1930년 10월초 난징(南京)에서 개최되는 제4차 중국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에 박찬익을 대표로 파견하였다. 이 회의에는 임시정부의 대표로 임명되었던 조소앙도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장제스(蔣介石)와 장쉐량(張學良) 등 중국국민당 인사들을 방문하여 한국독립당의 당의와 강령 등에 대해 설명하고 12월 상하이로 귀환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독립당의 실체가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독립당은 1920년대 중후반 전개된 중국 관내 민족유일당운동의 결실이었다. 민족주의 진영의 대표적인 독립운동정당이었고, 임시정부의 기초정당으로서 여당 역할을 수행했다. 나아가 의열투쟁과 선전활동 등을 통해 임시정부와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한국독립당은 1932년 4월 윤봉길의거를 계기로 송병조(宋秉祚)가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윤봉길의거 이후 중국 측의 지원금을 둘러싼 갈등 등이 발생하자 김구 계열이 퇴진하고 송병조·이유필(李裕弼)계열이 당의 주도권을 잡게된 것이었다. 하지만 1933년 3월과 10월 총무주임과 이사 겸 총무부원이 이유필·이수봉(李壽鳳)이 피체되고 말았다. 나아가 이사장인 송병조와 박창세(朴昌世) 등이1933년 8월 옥관빈(玉觀彬)·석현구(石鉉九) 등의 피살사건에 연루되어 상하이에서 활동이 제한되었다.
이에 한국독립당은 1934년 1월 중국국민당 항저우당부 및 항저우 공안국의 지원으로 항저우로 본부를 옮기게 되었다. 일제 측 정보 문서에는 한국독립당 항저우 사무소의 주소가 세군데로 나타나 있다. 항저우 학사로(學士路) 사흠방(思鑫坊) 34호와 40호·41호가 바로 그것이다. 확인되는 장소는 사흠방 40호로 현재 학사로 32호 부근이다. 번지수의 잦은 변경과 원주민과 상가가 뒤섞여 있어 현재화 됨에 따라 지번을 명확하게 비정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사흠방 40호 한국독립당 사무실은 현재 학사로 32호 부근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1920년대 건립되었고 건물 전체가 절강성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학사로 32호 근처 입구에 ‘사흠방’이라는 푯말이 있으며, 골목 안쪽에 한국독립당 사무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의 한계로 명확한 장소를 비정할 수 없지만,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기 전까지 이곳 전체를 사적지로 비정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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