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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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 청사 (호변촌)
사적지 종류 | 장소, 기념관 | 국가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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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 아시아 | 지역 | 저장성 |
문헌상 | 장생로 호변촌 23호 | ||
한글 | 절강성 항주시 상성구 장생로 55호 | ||
현지 | 浙江省 杭州市 上城区 长生路 55号 |
- 역사적 의의
- 항저우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청태제2여사 32호 이후 마련한 청사
-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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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5월 윤봉길(尹奉吉) 의거 이후 항저우지역 청태제2여사 32호에 청사를 마련했다. 이후 중국국민당의 도움으로 서호(西湖) 부근 장생로(長生路) 호변촌(湖邊村) 23호로 청사를 이전하였다. 청사 이전 시점은 자료의 한계로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동안 호변촌에 청사가 자리 잡은 시점이 1932년 5월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변촌이 문헌자료에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은 1934년부터였고, 일제가 호변촌을 청사로 인지한 시점도 1934년 1월 이후였다.
일제는 임시정부 청사가 전장(鎭江)에서 호변촌으로 이전한 시점을 1934년 1월 이후로 파악했다. 전강 청사를 담당하고 있던 "상무위원 박창세(朴昌世)가 특무단장(特務團長)"으로 부임하면서 자연스럽게 청사가 호변촌으로 이동했다고 보고한 문건이 바로 그것이다. 더불어 일제는 이 시기 호변촌을 청사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밀정들을 통해 파악했고, 이곳을 "임시정부판공처로 인정되는"장소로 결론지었다. 1930년대 항저우와 전장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박경순(朴景淳)은 신문조서에 1934년 3월 다수의 독립운동가들과 "항저우시 호변촌 23호 임시정부 판공처 등에서 여러 차례 회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항저우 호변촌이 청사로 사용되었던 시점은 1934년 1월 이후로 판단된다.
항저우 호변촌에 위치한 임시정부 청사 건물은 192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은 2층이며 총 면적은 423㎡, 전시공간은 340㎡이다. 2002년 항저우시 정부에 의해 청사 건물의 복원 계획이 수립되었고, 독립기념관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2007년 개관했다. 2012년 독립기념관의 지원으로 전시가 새롭게 개편되었고, 2016년에도 전시 일부가 보완되었다. 2013년 항저우시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2017년 절강성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다. 특히 2014년에는 국가급 항전 시설 및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청사는 정부산하 국영기업 항저우시 상무여유집단에서 관리하고 있고, 청사 관리인원은 모두 7명이다. 개관 이래 40만 5천 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특이한 점은 한국인 방문객보다 중국인 방문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연중 무휴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이다. 점심시간에도 전시관 관람이 가능하다.
기념관은 당시 거주했던 공간을 복원한 곳과 세 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다.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1층에는 객청(客廳), 즉 동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장소 및 휴게실과 기념품점, 안내해설사 휴게공간이 있고, 2층에는 당시 사용했던 침실들과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