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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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옌 김구 피난처
사적지 종류 | 장소, 기념관 | 국가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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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 아시아 | 지역 | 저장성 |
문헌상 | |||
한글 | 절강성 가흥시 해염현 남북호풍경구 재청별장 | ||
현지 | 浙江省 嘉兴市 海盐县 南北湖风景区 载青别墅 |
- 역사적 의의
- 김구가 자싱 매만가 피난처 이후 사용했던 피신처
- 설명
-
김구(金九)는 윤봉길(尹奉吉) 의거 이후 상하이(上海)를 떠나 자싱(嘉興)으로 피신하였다. 피난지는 추푸청(褚輔成)의 수양아들 천동셩(陳桐生)의 집이였다. 하지만 자싱까지 일경이 수색망을 넓혀오자 다시 피신처를 옮겨야 했다. 김구가 피신한 곳은 하이옌(海鹽)의 재청별장(載靑別莊)이란 곳이었다. 재청별장은 추푸청의 며느리 주지아루이(朱佳蕊)의 숙부 주찬칭(朱贊卿)의 소유였고, 하이옌현에서 서남쪽으로 40여리의 거리에 위치했다. 재청별장은 주지아루이의 할아버지 주빙셔우(朱丙壽)가 1916년 그의 둘째 아들의 요양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김구는 추푸청의 배려로 재청별장으로 피신할 수 있게 되었다.
1932년 7월경 김구는 주지아루이와 함께 재청별장으로 향하였다. 먼저 배를 타고 하이옌성 내무원진(武原鎭)에 있는 주가화원(朱家花園)에 도착했다. 주가화원은 주빙셔우의 개인 유원지였다. 두 사람은 다음날 다시 자동차를 타고 남북호(南北湖)에서 5~6리쯤 떨어진 노리언(盧里堰)에 도착하였다. 이곳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걸어서 이동했다. 재청별장에 도착한 김구는 주지아루이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신분이 노출되자 재차 자싱으로 돌아갔다. 하이옌 김구 피난처인 재청별장은 김구의 둘째인 김신이 1996년 방문하여 확인해주었다고 한다.
재청별장은 1996년 재건되었으며 건물의 상태는 양호하다. 총 부지는 535m2이며, 건물 면적은 185㎡이다. 건물은 정실(正室) 2칸, 객실(客室) 1칸, 정자 1개, 침실, 주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1년 자싱시는 재청별장 옆에 ‘김구 전시관’을 신축하고, 독립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전시관을 꾸렸다. 전시관의 총면적은 120m2이며, 전시는 ‘김구의 출생과 국내활동’, ‘임시정부와 김구’, ‘남북호와 김구’, ‘김구를 도운 중국인들’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있다.
현재 남북호여유투자집단유한공사(南北湖旅遊投資集團有限公司)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인원은 총 4명이다. 입장료는 재청별장만 관람할 경우 10원(元), 남북호 전체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80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매일 개방하고 있으며, 개방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이다.
남북호여유투자집단유한공사는 재청별장을 포함해 남북호풍경명승구(南北湖風景名勝區)를 조성하여 2015년에 개장하였다. 남북호풍경명승구는 AAAA급 관광지구자금성은 AAAAA급 관광지구로 지정되었고, 전체 관리 인원은 총 15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