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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 광동지부 사무소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광둥성
문헌상 와요후가 41호
한글 광동성 광주시 와요후가 41호
현지 广东省 广州市 瓦窑后街 一带
역사적 의의
한국독립당 광동지부가 있던 자리
설명
한국독립당 광동지부는 1932년 9월에 설치되었다. 전민족이 대동단결하여 유일정당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했지만, 좌우세력의 이념과 독립운동 방법의 차이로 결렬되자 김구·안창호·조소앙·이동녕 등 임시정부 중심의 민족진영인사들은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정부조직을 유지하고자 주요 도시에 지부를 설치했다.
한독당 광동지부는 일찍부터 광주에 체류하는 청년들을 규합하여 당세력을 확대했다. 혁명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청년들에게 중산대학과 황포군교 등 광동에 있는 학교에 입학을 알선하고 학업의 편의를 제공했다. 특히 중산대학과는 별도의 관계를 맺어 한독당에서 추천하는 학생은 입학은 학비와 기숙사비를 면제하고 생활비도 보조해 주었다.
1932년 11월 한국독립당 광동지부는 상해(上海) 동북의용군후원회(東北義勇軍後援會) 대표 왕보진(王葆眞)과 회의를 개최하고 한인 및 중국국민당원 유지로 중한협회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이후 중한협회는 중한련합원조동북의용군대회(中韓聯合援助東北義勇軍大會)로 개편되어 광동지역 중국인 항일운동세력과 한중연합 연대를 구축했다. 간사 양우조는 광동성정부 방직공업관리위원회 위원으로, 또 상해 동북의용군후원회광동지부 회원에서 활약 하면서 국내에서 한글 활자를 구해서 한독당 광동지부 기관지 《한독(韓聲)》을 발간하였다.
현재 와요후 41호 일대는 개발이 되어 서양식 단독 저택 몇 채가 瓦窯後街 전체에 건립되어 한독당사무실 위치 41호는 없어졌다. 가까운 주변에 중국공산당제3차대회 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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