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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즐오르다 고려극장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카자흐스탄
대륙 아시아 지역 카자흐스탄
문헌상 카즈베크 거리 21번지
한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카즈벡 비 거리 21번지
현지 Казахстан, г.Кызылорда, ул.Казыбек би 21
역사적 의의
한인들이 강제이주 후 1959년부터 사용했던 크즐오르다 고려극장
설명
고려극장은 1932년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원동변강조선극장’으로 창립되었다. 1937년 한인들의 강제이주에 따라 고려극장(또는 조선극장)을 포함한 문화기관들 역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옮겼다. 무대장치나 피아노 등은 그대로 두고 공연에 사용하는 최소한의 악기와 소품만을 가지고 가도록 허가되었다.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은 ‘극장 없는 극장’으로 빈 창고에 무대기구를 모아놓고 있는 형편이었으며 홍범도가 이곳의 수위를 맡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고려극장 단원들은 순회 공연팀을 조직하여 파종이나 수확, 그리고 여타 캠페인 기간에 집단농장원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연에 나섰다.
1939년 고려극장은 연출자 겸 희곡작가인 태장춘이 만든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작품과 코르네이축 각본의 ‘함대의 죽음’이라는 연극 등을 무대에 올렸다. 태장춘은 홍범도와 교류하며 그의 활동을 연극으로 완성하였고 1942년 초 ‘의병들’이란 이름으로 초연되었다. 이 연극은 홍범도 사망 후 ‘홍범도’로 이름을 바꾸고 내용도 수정되었다.
1942년 1월 13일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탈디코르간주 우슈토베로 이전이 결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침입하여 “관람 기반의 보장과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작업 환경의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1950년 우슈토베 고려극장은 타슈켄트의 고려극장과 통합하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극장은 매년 6~8개월 동안 순회공연을 하였다. 이후 극장 관계자들은 카자스흐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문제해결에 나섰다. 결국 고려극장의 지위는 상향(3급에서 2급으로 조정)되었고 새 화물차도 지급받았다. 또한 당시 수도인 알마티에서는 공연을 할 수 없었으나 1955년 9월 순회공연을 허가받았다.
1959년 5월 30일 고려극장은 크즐오르다로 다시 옮겨왔다. 크즐오르다의 한글신문 및 한인문화인들과 협력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극장은 과거 강제이주 직후 사용했던 곳이 아닌 새로 마련한 건물이었다. 고려극장이 크즐오르다에 있던 1960년 맹동욱의 연출로 연극 ‘홍범도’가 두 번째로 공연된 곳이다. 고려극장은 1962년 3월 22일 ‘음악-드라마 고려극장’으로 개칭되었고, 1964년 1월부터는 주(州)극장의 지위에서 국립(공화국) 극장으로 승격되었다.
1962년 12월 7일 극장 배우들과 관계자들은 “고려극장의 예술을 발전시킨 공로로” 표창장을 받았다. 김진과 이함덕은 카자흐스탄 인민배우 칭호를 부여받았고, 배우 이용수·최용도·박춘섭은 카자흐스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극장 대표 조정구는 카자흐스탄 최고 소비에트의 명예 표창을 받았고 극장의 대표 연출가인 채영에게는 카자흐스탄 예술 대표 표창이 수여되었다.
1968년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은 수도 알마티로 옮겼고 공연 장르가 변경되어 ‘음악희극 극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37년 강제이주 후 우슈토베로 이전하기 전까지 활동한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의 위치는 현재 알 수 없다. 다만, 조사과정에서 1938 -42년 시기 고려극장이 1959년 세워진 크즐오르다 고려극장 뒤에 위치했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1959년 이후 사용한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은 2012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고 지금은 크즐오르다시 산하 문화 및 언어발전시위원회로 사용되고 있다. 또 고려인을 비롯하여 타타르·체첸인 등 소수민족들의 문화 중심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에는 고려극장의 역사, 특히 홍범도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는 표지판이나 액자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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