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통합 검색

전체메뉴

지역별 사적지 정보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보세요!!

> 지역별 사적지 정보 > 아시아

선흥사 추정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타이완(대만)
대륙 아시아 지역 타이완
문헌상 臺北市 上奎府町 1-7 鮮興社蔘莊
한글 타이페이시 엔핑베이로 1단
현지 臺北市 延平北路 一段
역사적 의의
한재룡이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이주한인 직업을 알선하기 위해 운영했던 인삼농장
설명
한말 의주나 개성 출신 인삼상인 등은 중국을 경유하여 홍콩에 대거 진출하였다. 국제적인 항구인 홍콩은 동남아 각처를 활동무대로 삼을 만큼 주요한 출구였다.
타이완(臺灣)에서 선흥사(鮮興社)라는 인삼농장을 운영한 한재룡(韓材龍)도 이러한 인삼상인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무역을 통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한편 현지 이주한인들의 친목과 이익증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재룡은 평북 의주 출신으로 19년 전인 1903년경에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현지 적응에 성공한 그는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재산가로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한재룡은 불쌍한 동포를 위하여 자신의 사업을 망각하고 이들을 돌보았다는 사실에서 자선가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921년 당시 이주한인은 1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들 중 경상도 출신이 많아 지롱항(基隆港)을 ‘신부산(新釜山)’이라 불렀다. 이들 중 일부는 생업을 찾아 만주 등지에서 온 한국인 창기 등도 포함되었다. 1930년 인삼상인이 《동아일보》에 투고한 글에는 대략 500~600명이 동남아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5년 10월 조선총독부에서 발표한 세계 28개국에 산재한 한국인은 2,783,254명이었다. 이러한 수치는 재외 일본공관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확인된 부분이다.
인삼상인들은 한 곳에 정착하는 경우보다 각처로 이동하는 등 상당히 유동적인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한인이 이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주에서 발행된 《국민보》에 따르면 홍콩 7명, 마카오 3명, 베트남 54명, 말레이 15명, 인도 13명, 필리핀 18명 등이 활동하였다고 한다.
1930년대 후반 타이완에 거주한 한인은 2,0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한인이주자 증가는 국외 독립운동 기반을 확대ㆍ강화하는 요인이었다. 선흥사는 타이완 이주한인을 위한 구심체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지도보기   인쇄   목록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