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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하 순국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타이완(대만)
대륙 아시아 지역 타이완
문헌상
한글 타이페이시 대안구 금산남로 2단 52호
현지 台北市 大安区 金山南路 二段 52号
역사적 의의
조명하가 ‘구니노미야 저격사건’으로 복역 중 순국했던 타이페이 형무소의 옛 터
설명
1895년 세워진 타이페이(臺北) 형무소는 원래 타이페이성 내에 있었으나 1903년 1월 성 밖으로 이전하였다. 당시 타이완 각지에서는 항일의병의 무장투쟁이 부단히 계속되고 있었다. 일제 식민당국은 타이페이와 타이난(臺南)에 대규모 감옥을 건설하였다. 타이페이 형무소는 1910년대 초기 타이페이 성곽을 허물고 남겨진 석재를 이용하여 외벽을 쌓았다. 동서남북 각 220m 정도의 정사각형으로 외벽을 둘러친 타이페이 형무소의 내부 건물 배치는 부채꼴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담장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2.5~3.5m 정도로 매우 견고하다. 이는 19세기 이래 서구 감옥 평면배치의 조류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1928년 5월 14일 타이중(臺中) 도서관 앞에서 일왕 장인 구니노미야(久邇宮邦彦)를 처단하려 하였던 조명하(趙明河)는 거사에 실패하고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 직후 타이중(臺中) 경찰서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은 조명하는 타이중 형무소를 거쳐 6월 14일 저녁 타이페이 형무소로 이송되어 수형자 번호 152번의 명패를 단 채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는 7월 17일 타이페이 고등법원(臺北高等法院)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10월 10일 오전 10시경 형무소 교수대에서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생의 마지막 4개월 가까이 이곳 타이페이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조명하는 사형선고를 받은 뒤부터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별다른 동요 없이 조용히 수형 생활에 임하였다. 의연한 자세는 간수들을 감동시킴과 아울러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로 잡힌 미군 공군조종사 14명도 이곳에 수감되었다. 이들은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유족과 동료 전우 등은 산화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동판을 북쪽 외벽 입구에 설치하였다.
타이페이 형무소 외벽은 타이페이 성곽을 허물고 남겨진 석재를 이용하여 1910년대 초기에 완성하였다. 1963년 도시계획으로 감옥이 이전된 뒤 현재는 시 지정 고적으로 북쪽과 남쪽 외벽 전체와 뒤쪽 외벽 2/3 정도만이 남아있다. 감옥은 모두 철거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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