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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하 흉상

사적지 종류 동상 국가 타이완(대만)
대륙 아시아 지역 타이완
문헌상
한글 타이페이 만화구 68항 1호(타이페이 한국학교 교정)
현지 台北市 万华区 68巷2号(台北韩国学校校园)
역사적 의의
조명하의 ‘구니노미야 저격사건’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된 조명하의 흉상
설명
1928년 5월 14일 조명하(趙明河)의 타이완 타이중 의거는 시기적으로나 대상인물에서 대단한 장거임에 틀림없다. 이는 일본 조야에 커다란 충격과 아울러 타이완인에게 항일투쟁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조명하는 1905년 4월 8일(음)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하리면(下里面) 장천리(長泉里)에서 부친 조용우(趙鏞禹)와 모친 배장년(裵長年) 사이에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1918년 4년제 풍천(豊川)보통학교를 마치고 6년제 송화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1920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송화읍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친족 조용기(趙鏞基)의 일을 도우며 한약처방조제술을 습득하면서 강의록에 의한 외국어(영ㆍ독ㆍ불ㆍ일어) 공부에 몰두하여 상당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1925년 오금전(吳金全)과 결혼했으나 안일하게 신혼생활에 젖을 여념도 없이 약방 일에 열중하였다. 그러던 중 1926년 3월 신천(信川) 군청 서기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군청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불의에 굴할 수 없음과 조국의 시련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부산을 떠날 때부터 명하풍웅(明河豊雄)이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하였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도착한 조명하는 일찍이 익혀둔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인 행세를 하였다. 일본 각지를 유랑하다가 오사카(大阪)에 정착해서 전기제작소ㆍ야쓰다스(安達)메리야스ㆍ상점 등 고용원으로 전전하면서 거사 기회를 엿보는 한편 밤에는 상공학교(商工學校)에서 수학하며 학문에 몰두하였다.
일본에서 생활은 그의 의지와 달리 고통의 나날이었다.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 다가왔다. 그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가고자 뜻을 세웠다. 이에 앞서 1927년 11월에는 타이완에 도착하여 일본인으로 위장ㆍ행세했다. 그는 타이중시 일본인 이케다(池田正秀)가 경영하는 부귀원(富貴園)이란 차업(茶業)농장 고용원으로 취업하였다. 타이완 우에야마(上山滿之進) 총독을 처단하여 항일 기세를 올릴 것을 결심한 그는 장천제(張天弟)로부터 보검도(寶劍刀)를 구입하여 농장 숲 속에 숨어 검술을 연마했다.
1928년 5월 일본의 왕족이자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으로 군사참의관(軍事參議官)까지 역임한 육군대장이며 일본 정계의 거물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는 일본군 특별검열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상하이로 가더라도 이보다 더 큰 괴수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단정하여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할 것을 결심하였다. 5월 14일 구니노미야는 일본군 검열을 마치고 타이페이로 가기 위해 타이중역으로 향했다. 그는 길목인 타이중도서관 앞 모퉁이에서 환송 인파와 경비원 사이에 숨어 있다가 서행하는 차에 뛰어올라 검으로 처단하고자 하였다. 조명하는 거사 현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부르고, 당황하는 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