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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한 국민일보사 / 홍명희 거주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싱가포르
대륙 아시아 지역 싱가포르
문헌상
한글 싱가포르 금방로 50호
현지 50, Kim Pong Road(金榜路 50號)
역사적 의의
홍명희 등이 독립군 자금 모금하기 위해 고무농장 운영과 인삼 수출을 도모했던 숙소이자 중계 연락처
설명
1914년 10월 3일(음력) 홍명희 제안에 따라 일행은 동남아시아에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한 독립군기지 건설에 동의하였다. 이들은 10월 6일 상해 동지들과 작별한 후 이튿날 싱가포르를 향해 곧바로 출발했다. 항해 도중 전염병 등이 창궐하여 홍콩과 말레이시아 산타칸(山打根) 등지를 거쳐 약 105일이라는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일행은 1915년 3월 4일(음력 1월 19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차이나타운인 우차수(牛車水)에 위치한 《국민일보》 발행소 3층에 머물렀다. 이들은 국민일보사 사장인 레이티에야(雷鐵崖)의 배려로 상해 신규식에게 향후 계획에 관한 서신 등을 우송할 수 있었다. 또한, 인삼업에 종사하는 의주인 유성풍(劉聖豊)이나 동지 이정(李貞) 등 현지 한국인들로부터 각종 정보도 얻었다.
6월 13일(음력) 이들은 우차수 중심가에서 2㎞ 정도 서쪽에 있는 금방로 50호에 있는 양옥 한 채를 빌어 1917년 12월 9일 홍명희가 싱가포르를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양옥은 응접실ㆍ부엌ㆍ식당ㆍ서재ㆍ침실 등이 각각 1칸인 제법 큰 규모였다. 침실은 4개 침대를 놓아도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싱가포르를 떠날 때까지 2년 반 동안 일행은 말레이시아ㆍ홍콩ㆍ태국ㆍ실론ㆍ페낭ㆍ자바 등지에 거주하는 한인은 물론 중국 화교계 친구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였다. 특히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하여 직접 말레이반도의 말라카(Mallaca) 근처에 고무농장을 구입ㆍ운영하였다. 고무공장 설립과 주석광산 구입 등도 논의되었으나 자금 부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 같다. 정원택은 일행과 함께 고무농장을 둘러본 후 동남아시아 생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남국 무더위는 언제라도 무더워 / 해는 다 가도 계절은 옮겨지지 않네/ 옛 가르침은 실행키 어렵고 / 새로 만들어진 책은 오기심만 자아낸다/ 춥고 더움이 한결같이 변함없으니 / 봄과 가을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상 위에 있는 책력을 보고서야 / 비로서 어느 계절인지 알겠구나.
일행이 머물던 곳은 말레이반도를 중심으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는 ‘거점지’였다. 상해에서 활동하던 민족운동가와 연계 이후에는 안창호의 이상촌(理想村) 건설을 위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이곳은 유럽 등지로 유학을 떠나거나 상업활동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중계지’나 다름없었다.
국민일보사는 현재 잘 정비된 주택가의 도로변에 있다. 길 건너편은 시장과 공원으로 우차수에서 가까운 관계로 주민의 대부분은 중국계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상태로 보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나 지번은 1910년대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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