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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ㆍ윤병구의 대미외교 활동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미국
대륙 북아메리카 지역 뉴욕
문헌상
한글 뉴욕주 오이스터만 사가모어 힐 로드 12
현지 12 Segamore Hill Rd., Oyster Bay, NY
역사적 의의
이승만과 윤병구가 루즈벨트 미대통령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전개했던 곳
설명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잇따른 승리로 전세가 우세했으나 막대한 전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 러시아와 더 이상의 전쟁 확대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05년 7월 초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강화를 중재하면서 그해 8월 포츠머스에 러일강화회의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하와이 한인사회는 러일강화회의에 한인대표를 파견할 계획을 세우고 윤병구에게 그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때마침 미국 국방장관 윌리암 태프트가 7월 7일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미국 대통령의 영애인 앨리스와 함께 일본으로 가는 길에 호놀룰루에 들르자 윤병구는 와드만 감리사가 하와이 총독대리 애트킨슨의 도움으로 한인대표의 자격으로 그를 만나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소개장을 받았다. 하와이 한인들은 7월 12일 자로 ‘하와이 거주 한인들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드리는 청원서(Petition from the Koreans of Hawaii to President Roosevelt)’를 작성했다. 청원서의 내용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로 러일강화회의 때 한국의 주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7월 15일 하와이의 한인들은 에와 사탕수수농장에 모여 임시공동회를 개최하고 윤병구를 하와이 한인 7,000명을 대표한 공식 총대로 선출해 전권을 위임했다. 하와이 한인들은 총대로 선출된 윤병구의 여행 경비를 위해 500달러를 모금해 전달했다. 윤병구의 활동은 러일강화회의의 참관인으로 활동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주목적은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미리 작성한 독립청원서를 제출해 한인들의 희망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하와이 한인을 대표한 총대로 선출된 윤병구는 조지워싱턴 대학교의 입학을 위해 준비 중이던 이승만에게 타전해 이번 외교활동의 동참을 알린 뒤 7월 19일 알라메다호를 타고 미국 동부로 향했다.
한편 국권수호를 위해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은 반정부활동을 이유로 한성감옥에서 5년 7개월간 옥살이를 마치고 1904년 11월 도미했다. 외형적으로는 유학을 위한 것이었으나 실상 민영환과 한규설의 밀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미국의 친한파 의원인 딘스모어(Huge A. Dinsmore)를 통해 미국무장관 헤이(John Hay)와 면담해 한미조약을 근거로 미국의 한국주권보장을 요청했다.
미국에 건너와서 주권수호를 위한 외교활동을 펼치던 이승만은 윤병구의 타전 소식을 듣고 7월 31일 워싱턴DC에서 윤병구를 만났다. 두 사람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서재필을 찾아가 청원서의 문장을 다듬고 거사진행을 상의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두 사람은 8월 4일 뉴욕주 오이스터 베이의 새거모어 힐(Sagamore Hill)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하계백악관(The Summer White House, 1902∼1908)’으로 불리는 그의 별장으로 찾아갔다.
이승만과 윤병구는 30분간의 짧은 접견 동안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가지고 갔던 청원서와 자개로 된 접시 1점을 선물로 증정했다. 루즈벨트는 청원서의 내용을 읽어본 후 워싱턴에 있는 한국 공관을 통해 국무성에 제출해 달라 하고는 이 청원서를 다시 돌려주었다. 루즈벨트는 이미 두 사람이 당도하기 전에 일본에 보낸 태프트가 일본 수상 가쓰라(佳太郞)와의 회담에서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이익을 묵인하는 대신 한국을 보호국화 하려는 일본의 행동에 미국이 동의한다는 의사를 7월 31일 자 전보로 동경에 보낸 바 있었다. 즉, 윤병구와 이승만이 당도하기 전에 미국정부는 일본과 비밀조약을 체결해 일본의 한국속방화를 묵인하였다. 따라서 태프트의 소개장이나 루즈벨트의 접견은 모두 형식적인 겉치레로써 두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이런 내막을 알 수 없었던 윤병구와 이승만은 1882년 5월에 조인된 한미수호조약을 근거로 미국정부의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아무 효용이 없었다. 더구나 워싱턴의 주미대리공사 김윤정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본의 지령에 따라 청원서 전달을 거부함으로써 두 사람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새거모아 힐에 있는 루즈벨트의 하계별장은 현재 루즈벨트와 그의 가족들이 당시에 사용한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전시해 놓은 역사기념관으로 잘 보존되고 있다. 이승만과 윤병구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증정했던 자개로 만든 쟁반모양 선물 1점은 별장 거실 벽면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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