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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형제 카페테리아 : 로렌스 카페테리아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미국
대륙 북아메리카 지역 일리노이
문헌상 3254 West Lawrence Avenue, Chicago, IL
한글 일리노이주 시카고 웨스트 로렌스 애비뉴 3148
현지 3148 West Lawrence Avenue, Chicago, IL
역사적 의의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던 강영소(둘째), 강영문(셋째), 강영상(넷째) 형제가 경영하였던 식당
설명
미주 한인사회의 유력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강영소는 1917년 후반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강영소는 1916년과 1920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였으며, 이같은 공훈으로 1921년 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창립 12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회 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는 10년 넘게 하와이와 북미에서 국민회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던 것이다. 강영소는 시카고에 정착한 뒤 1918년에 국민회 시카고 지방회를 복설할 때 서기겸 재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1919년 당시 중앙총회의 재무를 맡고 있었는데, 3·1운동이 발발하자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는 하와이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하와이 한인사회를 통합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 후 하와이에서 1년 6개월 동안 사업과 계몽활동을 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돌아왔고, 곧바로 시카고로 옮겼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양식당을 운영하던 강영상이 강영소와 동업하기 위하여 시카고로 옮겨왔다. 당시 시카고에서 식당업으로 성공한 김경의 도움을 받은 강영소는 1922년 후반에서 1923년 초반 사이에 식당을 개업했고, 강영문·강영상 형제가 합세했다. 처음 상호명은 로렌스 카페테리아(Lawrence Cafeteria)였고 9개의 테이블로 사업이 시작하여 크게 성공을 하였다. 『우라키』 제2호에 실린 「재미동포 실업상황」이라는 표에 의하면, 1926년 당시 로렌스 카페테리아의 자본금은 3천 달러이고, 고용원은 6명, 연 매출액은 3만 달러였다고 한다.
강씨 형제들은 1926년에 디버시 파크웨이(Diversey Parkway) 652번지에 카페테리아를 사서 디버시 카페테리아(Diversey Cafeteria)라는 식당을 개업하면서 사업을 확대하였다.
아마도 1925년 시카고로 이주한 천세헌(千世憲)과 동업하여 하워드 카페테리아(Howard Cafeteria) 라는 새 식당을 개업한 것으로 보인다. 디버시 카페테리아는 강씨 형제들이 동업한 것으로 로렌스 카페테리아와 디버시 카페테리아는 모두 소재한 거리의 이름을 식당명으로 삼았다. 강영문은 1927년경 본격적으로 식당운영에 나섰다. 강씨 형제들은 로렌스 카페테리아와 디버시 카페테리의 경영하여 1927년 당시 두 집의 자리가 180여 개쯤 되었고, 매일 6백명 정도의 손님들을 받았다. 이리하여 이들 형제들의 연 수입은 9만 달러 정도가 되었다. 1930년 말 강씨 형제들은 ‘강씨형제 카페테리아 회사(KANG BROTHERS CAFETERIA CO.)’라고 하여 두 곳에서 영업을 하였다. 로렌스 카페테리아는 1만 6천달러의 자본금으로 이루어진 합자회사로 총수입이 5만 달러에 이르렀고 고용인이 14명이었다. 강영대는 지배인을 맡고 있었다. 디버시 카페테리아의 자본금은 2만 달러, 총수입은 6만 달러였다. 고용인은 16인, 지배인은 강영소였다. 그리고 강영대·강영소·강영문·강영상·강혜순이 주주였다.
강영소는 식당사업을 경영하는 외에 시카고 한인사회의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신한민보사 시카고지국을 총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931년 8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에 따라 그가 경영하던 로렌스 카페테리아도 파산 위기를 맞았다가, 김경이 동업 형태로 자본을 투자하여 1933년 2월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강영소는 다시 병이 재발하여 1934년 8월 26일 운명하였고, 그의 묘소는 어빙 파크Irving Park에 있다. 강영소 사후 그가 경영하였던 디버시 카페테리아는 법원 관리에 들어갔다가 1936년 1월 박필朴必이 매입하여 운영하였다.
한편 강영소의 부친 강명화(姜明化)는 북미지방총회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그의 형제들도 대한인국민회의 직임을 맡아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같은 공헌으로 강영소는 건국훈장 독립장(2011), 부친 강명화와 형 강영대(姜永大), 동생 강영문(姜永文)은 애족장(2012), 동생 강영각(姜永珏)은 건국포장(1997), 동생 강영상(姜永商)은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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