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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공사 묘역

사적지 종류 묘역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상트페테르부르크
문헌상
한글 상트페테부르크 북방묘지
현지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Северное кладбище
역사적 의의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묘역
설명
이범진의 유해는 1911년 2월 3일 우스펜스키 묘지로 안장되었다. 시내에서 묘지까지는 기차 편으로 운구되었으며, 많은 조문객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하게 장례식이 치러졌다. 러시아신문 《생 피터스부르크 베도모찌스》는 1911년 1월 22일 자에서 이범진의 장례식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왕자 이범진의 영결식」. 어제 이른 아침부터 뻬뜨로빠블롭스키 병원 영안실 인근에 수많은 군중이 모였다. 오전 10시에 교회의 높은 단 위에 애국 왕자의 시신이 들어있는 큰 참나무관이 놓여 있고, 고인의 아들 부부, 사돈인 놀켄남작 부부, 페테르부르크 한국교민 대표단, 모스크바와 트베리 등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조문객들이 교회로 모였다. 고인의 아들이 관을 운반하기 전에 고인의 관 위에 대형조화를 놓았다. 그리고 한국민 명의의 다른 조화도 놓여 있었다. 오전 11시경 관 뚜껑이 닫히고 한 번 더 견고하게 고정되었다. 친인척과 조문 대표단들이 직접 관을 안고 교회를 나와 흰 천으로 덮인 6필의 백마가 끄는 흰 마차에 관을 안치했다. 정오에 구슬픈 장의 행렬이 병원에서 나와 핀란드 역으로 향했다. 행렬 선두에는 한국조문 대표단이 고인의 영정과 훈장 등을 운반하고, 관 뒤에는 아들과 친인척, 한국교민 대표단이 뒤따랐다. 12시 30분에 장의 행렬은 특별 운구 열차가 대기하고 있는 핀란드 역에 도착한 후 운구용 차량으로 옮겨졌다. 관 위에는 태극기가 놓여 있었다. 오후 1시 15분 친인척과 평소 고인과 가까이 지냈던 조문객을 태운 3량의 운구 열차가 폴랫폼을 떠나 우즈펜스키 묘지를 향했다. 그곳에 시신이 안장되었다. 뻬뜨로빠블롭스키 병원 영안실 예배당에서도, 묘지에서도 그 어떤 장례의식과 추도사도 행해지지 않았다.”(동지 1월 22일자)
이범진의 묘역 기념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부터 북쪽으로 거의 40여 분 소요되는 지역에 있다. 1958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소비에트는 이전의 ‘우스펜스키 공동묘지’에 새로운 ‘북방 공동묘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승인하였다. 그 결과 오래된 묘역에는 방문객이 있는 묘지들만 보존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오래된 대다수의 묘지가 없어졌고, 묘비는 물론 묘역의 지리적 명칭까지도 분실되고 말았다(공동묘지 안내판). 이범진의 묘는 이때의 대대적인 묘역 재정비 작업 과정에서 훼실되었을 것이다.
이범진 순국비에는 “이범진 공사는 1852년 9월 3일 한국 서울에서 탄생하여 1911년 1월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순국한 대한의 충신이다”라고 한글과 러시아로 쓰여 있다. 1958년에 우스펜스키 공동묘지가 북방 공동묘지로 재편되면서 이범진의 묘역도 소실되었다. 이범진 공사의 유해가 묻혔던 곳은 페테레스부르크 시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마이크로필름 자료(253-3-4098, 43쪽)에 따르면, 북방묘지 2구역에 묻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2구역이 정확하게 현재의 2구역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이범진의 유해가 제8구역 초입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래서, 그곳에 2007년 7월 한국정부가 이범진 순국비를 세웠다. 묘역 관리사무소 옆에 세워진 안내판의 평면도(Plan Severnogo Kladbisha)에는 이 묘역에 묻혀있는 17명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생몰연도와 직함(또는 칭호)이 쓰여 있는데, 이범진을 6번째에 올려놓고 러시아어로 “리범진Li Bom Dzhin 1852~1911 한국 공사 왕자”라고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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