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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로예 열사능원

사적지 종류 묘역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허베이성
문헌상
한글 하북성 한단시 능원로 60호
현지 河北省 邯郸市 陵园路 60号
역사적 의의
산서ㆍ하북ㆍ하남ㆍ산동 4성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진기로예 팔로군 유격전구에서 항일투쟁을 하다 숨진 열사들의 능원으로 윤세주와 진광화의 묘역이 있는 곳
설명
서현(涉縣) 스원촌(石門村)에 안장된 열사들의 유해는 1950년 10월 낙성된 한단(邯鄲) 시내의 진기로예 열사능원(1986년 10월 중국 정부에 의해 전국 중점 열사기념 건축물 보호단위로 지정)으로 이장되었다.
열사능원은 남원(南園)과 북원(北園)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 대체로 북원은 묘역을 비롯하여 관리구역·기념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원은 묘역이 중심이 되고 있다. 타이항산(太行山) 스원촌에 있던 윤세주·진광화의 묘는 같은 자리에 똑같은 규모로 건축되었으나 이곳으로 이장 후에는 각기 다른 곳에 모셔지게 되었다. 윤세주의 묘는 남원 정문에서 100m 전진 뒤 좌측 입구 정면 3열 17번째이고 진광화 열사는 북원 줘취엔 묘역의 왼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진광화의 묘는 원래 중국 항일열사인 범축선(范筑先)의 묘로 조성되었으나 부인과 유족들이 원하지 않아 대신 모셔지게 되었다. 이러한 결정에는 진광화가 중국공산당원이라는 것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윤세주 열사 묘소 앞에는 검은 대리석의 묘비가 있다. 묘비에는 ‘석정 윤세주 열사’라고 각인되어 있다. 1919년 지린 성 지린시 파호문 밖에서 13명의 결사대가 모여 ‘조국의 광복을 위해’라는 기치 아래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석정 윤세주는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의열단 조직 후 그는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독립운동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가 의열단 사건으로 6년여를 복역한 후 다시 남경에서 또 다른 방향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은 활동영역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의 질적 변화를 추구하였음을 반증한다. 1942년 5월 타이항 산 전투에서 순국한 후 스원촌에 있는 묘를 1950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진광화 열사 묘는 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묘소 옆에는 진광화 열사의 약력이 기록된 묘비가 서 있다.

‘조선혁명 열사 진광화 동지 묘지. 열사의 원명은 김창화이다. 1911년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평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1년 국내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항일의 뜻을 두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1937년 광동성 중산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하였으며, 한국 국민당과 조선 청년 전위 단의 활동에 참가하였다. 1936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1938년 화북 타이항 산 항일근거지에서 중요한 사업을 담당하였다. 1941년 화북 조선 청년연합회를 설립하였으며, 1942년 5월 타이항산 반소탕전에서 희생당하였다. 진기로예변구당정 군민 및 조선독립동맹,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는 열사의 공적을 추모하여 묘를 만들고 비석을 세워 기념한다. 중화민국 31년 10월 10일 세움’

열사능원의 임직원은 모두 80여 명이며 2~3명의 연구원을 두고 있다. 2013년 10월 능원 전체를 보수하였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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