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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건물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충칭
문헌상 중경시 신생로 45호
한글 충칭시 유중구 추용로 37호
현지 重庆市 渝中区 渝中区路 邹容路 37号 韩国光复军总司令部旧址
역사적 의의
한국광복군총사령부가 사용했던 건물
설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은 중국 충칭(重慶)에서 창설되었다. 임시정부는 수립 초기부터 군대를 편성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1919년 12월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大韓民國陸軍臨時軍制)」 등 군대의 편성과 독립전쟁을 위한 군사정책을 수립한 것이 그러한 계획이었다. 임시정부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한국광복군 창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7월 15일 유동렬(柳東說)과 지청천(池靑天) 등을 중심으로 군사위원회를 발족시켰고, 1939년 임시정부가 치장(綦江)에 도착한 뒤 독자적으로 군사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먼저 조성환(曺成煥)을 책임자로 하는 군사특파단(軍事特派團)을 구성하여 시안(西安)으로 파견하여 화베이(華北) 일대에 이주해있던 한인들을 대상으로 병력을 모집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를 상대로 군대 창설과 관련한 교섭을 전개하였다. 중국 내에서 군대를 편성하는 문제는 중국 당국의 승인과 양해가 필요한 사항이었고, 나아가 창군 및 운영에 따른 재정적 원조도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측과의 교섭은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교섭과 제의는 중국 측으로부터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중국 측의 긍정적인 반응에 따라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 창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인 「한국광복군편련계획대강(韓國光復軍編練計劃大綱)」을 중국정부에 제출하였다. 핵심은 한국광복군을 편성하여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전개한다는 것, 이를 위한 중국의 재정적 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광복군의 예속문제에 대해선 ㄴ"한국광복군총사령부 직할로 한다"는 것과 "중국군사최고영수가 중한연합군총사령의 자격으로 통솔 지휘한다"고 했다. 이에 중국군사위원회 실무자들은 한국광복군의 독자성을 부인하고 중국군사위원회에 예속시켜야한다는 의견을 주장하였다.
임시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중국국민당의 지원과 협조없이 독자적으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1940년 9월 15일 「한국광복군선언문(韓國光復軍宣言文)」을 발표하여 한국광복군 창설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월 17일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이로써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다.
한국광복군은 총사령부와 산하에 3개 지대로 편제되었다. 총사령부는 지휘부였고 지대는 단위부대였다. 총사령부와 제1지대는 충칭에 주둔했고 2지대는 시안, 제3지대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이중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는 창설 직후 1940년 11월 황학수(黃學秀)를 총사령 대리로 임명하여 시안에 총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시안시내 이부가(二府街) 4호에 설치한 '서안총사령부잠정부서(西安總司令部暫定部署)'가 바로 그것이었다. 총사령부가 시안으로 이전한 이유는 이미 군사특파단이 파견되어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화베이지역과 가까운 전선으로 약 20여 만명에 이르는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선전활동과 부대편제를 위한 병력 모집이 적합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총사령과 참모장 이범석(李範錫) 등은 중국 군사 당국과 교섭을 위해 충칭에 남았다.
서안에 설치되었던 총사령부는 1942년 충칭으로 귀환하였다. 1941년 11월 15일 중국군사위원회에서는 한국광복군을 통할·지휘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한국광복군은 중국군사위원회 판공청(辦公廳)에 소속되어 관할·지휘를 받게 되었다. 이후 중국군사위원회는 시안에 위치한 총사령부를 충칭으로 이전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총사령부는 1942년 하반기 충칭 신생로(新生路) 45호로 이전하였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는 1991년 '광복군 유적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되었다. 총사령부 건물이 위치한 신생로 45호는 1943년 9월 18일 청년로(靑年路)와 추용로(鄒容路) 사이가 개수되면서 신생로가 추용로로 편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생로 45번지는 현재의 추용로 37번지로 지번이 변동되었다. 1999년 총사령부 건물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표지석 설치를 추진했고 독립기념관은 2003년 총사령부 건물 훼손을 대비하여 정밀 실측을 실시하였다. 2013년 12월 충칭시는 총사령부 건물 주변에 금융가 개발을 결정했다. 2014년 한국 측의 요청과 한중관계를 고려하여 총사령부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기로 결정했으나 안전상의 문제로 2015년 철거하였다. 이후 중국측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2018년 3월 총사령부 건물 복원이 결정되었다. 그 결과 2019년 봄에 복원·개관하였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은 2019년 복원·개관되었다. 현재 일반인 개방은 하지 않고 있다.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은 전시실, 2층은 광복군 사무실을 복원해 놓았다. 3층은 기념품 판매점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2018년 충칭시유중구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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