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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국가 중국
주소 중경시 유중구 추용로 37호
역사적 의의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사용했던 본부 건물
설명
1940년 9월 17일 중경시 가릉빈관에서 성대하게 창설식을 거행한 한국광복군총사령부가 1942년 말을 전후한 시기까지 사용했던 본부 건물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족주의 진영 3당(한국국민당, 재건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의 연합을 추진함과 동시에 군사특파단을 구성하고 서안으로 파견하여 한국광복군을 창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중국정부의 양해와 경제적ㆍ물질적 지원을 받아 한국광복군을 창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 군사위원회 실무자들은 조선의용대의 전례를 들어 한국광복군의 독자성을 부인하고 중국 군사위원회 소속으로 둘 것을 주장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창설에 비협조적이었다. 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정부의 지원과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1940년 9월 15일 「한국광복군 선언문」을 발표하여 한국광복군의 창설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월 17일 중경시의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였다. 이로써 일본과 본격적인 무력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는 창설 직후 서안으로 이전하였다. 서안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화북지역과 가까운 전선으로 약 20여만 명에 이르는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선전활동과 모집이 적합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1943년 말 ‘신생로’가 ‘추용로’로 변경되었다는 것은 확인되었으며, 이른바 \'미원\' 건물로 알려진 곳이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사용했던 건물이다.
1층은 음식점으로 운영해오다가, 2011년 의류상가로 바뀌었다. 2013년에는 중경시 정부가 오사야항 복원과 함께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도 이전 복원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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