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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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관동지방법원
국가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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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요녕성 대련시 여순구구 황하로 북일항 33호 |
- 역사적 의의
- 안중근과 신채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재판을 받았던 법원 건물
-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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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관동지방법원은 요녕성 대련시 여순구구 황하로 북일항 33호에 위치해 있다. 최초 건물은 러시아에 의해 세워졌다. 러시아는 1902년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이곳에 병영(兵營)을 설치하였다(현재 건물의 양쪽 끝에 있는 단층방).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여순을 점령한 후 1906년 9월 이곳에 관동도독부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설치하였다. 그해 11월 양쪽 끝 단층방 사이에 2층 건물을 올리는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07년 10월 완공되었다.
여순관동지방법원은 일본의 대표적인 식민통치 기관으로 중국인뿐만 아니라 당시 요동지역에 거주하던 러시아, 이집트, 터키, 독일의 반파시즘 인사들이 판결을 받고 투옥된 곳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안중근이다. 안중근은 하얼빈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후 여순일아감옥에 수형된 후 1910년 2월 7일~14일에 이곳 대법정에서 6차례에 걸친 재판을 받았다. 안중근의사는 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초고속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안중근은 분명한 어조로 동양의 평화사상과 일본 제국주의의 죄상을 세계에 폭로하였다. 영국의 『더 그래픽』이란 잡지는 "세기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월계관을 거머쥔 채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라고 보도하였다.
1987년 여순구구 문물 중점 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대련시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1991년 여순관동지방법원구지진열관 건립이 계획되었으며, 2003년 8월 ‘여순일본관동법원구지진열관’이 조성되었다. 2006년 5월 일반인에게 공개된 진열관의 전시는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첫째 관동법원의 연혁과 함께 대련과 여순에 건립되었던 일제의 군사ㆍ정치ㆍ사법 기구들에 대한 연혁들이 소개되어 있다. 둘째 당시 현장에 대한 복원으로 대법정실과 2급 법정실, 원장실ㆍ검사관실ㆍ법인 출정 통로가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셋째 당시 법정에서 사용했던 물건 및 수형자 압류 차량 등의 자료를 모아 전시하고 있다. 넷째 법정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섰던 항일지사들의 모습을 사진과 설명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일제가 항일지사들을 탄압할 때 사용했던 도구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